[단독] “한국과 필리핀은 다르다” 피플파워 확산 경계 기사의 사진
리처드 워커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1986년 4월 25일 미 국무부에 보낸 문서. 제1야당이었던 신민당과 야권 지도자 김대중이 필리핀의 피플파워를 염두에 두면서 한국의 민주화에 낙관론을 갖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출처=미국 디지털 국가안보 기록보관소
필리핀의 ‘피플파워’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리처드 워커 주한 미국대사는 1986년 4월 25일에 쓴 ‘슐츠 장관 방한 직전 한국 내부 정치 상황 평가’ 문서에서 피플파워에 대한 당시 야권의 지나친 낙관론을 묘사했다.

워커 대사는 “오래 이어지는 ‘포스트 마닐라’ 희열 속에서 김대중은 전두환이 1988년 선거(실제로는 1987년 선거) 이전에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을 강요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김대중과 다른 신민당 지도자들은 (1000만) 개헌 서명운동을 통해 정부의 탄압 조치를 촉발시킬 거대한 대중적 지지를 기대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적 불만을 불러일으켜 피플 파워가 전두환을 쓸어버릴 것이라고 그들은 계산했다”고 썼다.

하지만 한국이 제2의 필리핀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미국은 슐츠 장관을 통해 “한국과 필리핀은 다르다”고 역설했다. 전두환 체제의 방패막이 역할을 자처한 것이었다.

슐츠 장관은 86년 5월 8일 주한 미국대사 관저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 이민우 신민당 총재, 이만섭 국민당 총재 등 3당 대표를 포함해 국내 각계 인사들과 조찬을 함께했다. 하지만 김영삼·김대중 양 김씨는 초대받지 못했다.

미국은 양 김씨를 홀대했다. 슐츠 방한을 수행했던 개스틴 시거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같은 날 오전 10시부터 주한 미부대사 관저에서 신민당의 이철승·김동영 의원, 김상현·정대철 전 의원 등 4명과 한국 정세에 대한 티타임을 가졌다. 미국은 물론 이 자리에 양김씨를 초대했다. 하지만 양김씨는 선약 등을 이유로 대며 불참했다. 미국이 초청자(시거 차관보)와 초청대상자 모두 격에 맞지 않은 자리에 초대하면서 양김씨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것이 원인이었다.

86년 5월 7일 슐츠와 최광수 외무장관 간 회담을 앞두고 회담 장소인 한국 외무장관실에 미국 경호팀이 사전통보 없이 화약탐지용 군견 셰퍼드를 데리고 갔다. 신민당은 “전두환 정권의 굴종적 대미 자세와 미국 정부 오만함의 산물”이라고 비판했다. 미 대사관은 즉각 유감을 표명했지만 분노한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슐츠는 88년 7월 국무장관으로서 한국을 마지막 방문했을 때 여야 당 대표들과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김종필 공화당 총재는 “오늘은 셰퍼드가 없어서 좋구만”이라고 농담을 던졌을 정도로 한국민의 뇌리에 박힌 사건이었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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