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명섭] 우리나라 원전 기술력 신뢰할 만하다 기사의 사진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는 말이 있다. 칼 세이건의 소설 ‘콘택트’에 등장하는 이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부정하지 말라는 의미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잘 믿지 않기 때문이다.

원자력에 대한 생각이 그렇다. 원자폭탄으로 쓰였을 때는 가공할 만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원자력이 전 세계 31개 나라의 인프라 에너지원으로 자리하게 되었지만, 지난 60년간 세 번의 사고가 원자력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거두게 하지는 못했다. 신기후체제에서 탄소 배출이 가장 적은 에너지원이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여전히 기피의 대상이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 역사는 더 드라마틱하다. 1955년 미국과 원자력 협정을 체결하고 1962년 트리가 마크-2라는 연구용 원자로를 가동하고, 1978년 최초의 고리 1호기가 가동되었다. 1980년대에는 기술 자립의 틀을 갖췄고, 1990년대 반핵운동의 터널을 지나면서도 2009년 첫 한국형 원전 수출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잇따른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 실패로 원전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봤을 때 기술에 투자하지 않고 자립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없었을 현재다. 2000년에 우리나라의 누적 원자력 발전량이 1조㎾h를 돌파하면서 석유 수입량 1년분인 7억 배럴의 수입을 대체하는 효과를 창출한 것이 하나의 예다. 모든 기술은 자체로 완전하지 않지만 안전 관리를 할 수 있는 기술적 진화는 가능하다는 경험을 갖게 된 시기였다.

지난달 25일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이 발표되자 다시 원자력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중저준위도 20년 가까이 걸렸는데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선정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부터 탈원전과 함께 사용후 핵연료 관리를 논의해야 한다는 명분론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비관적 전망의 핵심은 한마디로 앞으로 잘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가 아니라는 말은 이때 쓰여야 한다. 지금껏 우리가 이룬 기술력은 미래를 앞당겨 확인한 증거가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구현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갈 때 기술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기술 진보가 그 증거다.

노명섭 한전국제원자력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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