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희망이다] 달동네 아이들 희망 합주하며 가난을 지웠다

⑪ 28년째 달동네 섬기는 목사님

[소년이 희망이다] 달동네 아이들 희망 합주하며 가난을 지웠다 기사의 사진
전남 여수 산동네 소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산동네 목사가 이 아이에게 쥐어준 악기는 자존심과 자부심이 됐다. 소녀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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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류탄 투척 훈련 중에 제가 던진 수류탄 파편이 제 얼굴 왼쪽 눈 옆에 박히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파편이 1cm만 옆으로 튀어도 실명할 수 있는 사고였습니다. 그리고 군종 사병으로 성경책을 받기 위해 트럭을 타고 사단으로 출발하려는데 누군가 차를 세웠습니다. 트럭 밑에서 박격 포탄이 발견된 것입니다. 트럭이 포탄 위를 지나가면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조선대 1학년이던 정한수(60·전남 여수열린교회) 목사는 유신반대 운동을 하다 78년 강제 징집됐습니다. 독재정권에 의해 끌려간 그는 실명 등의 위험에서 벗어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가난한 이웃과 평생 살기로 다짐한 그는 공장 생활로 번 돈으로 한신대 신학과에 입학한 뒤 신문배달과 우유배달 등으로 학비를 대며 어렵게 졸업했습니다.

그는 28년째 산동네 이웃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의 교회공동체가 뿌리 내린 광무동은 선원과 일용노동자, 노점상과 시장 상인 등이 사는 여수에서 가장 가난한 산동네입니다. 아내 이인애(58)씨와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무료탁아소였습니다. 그런 다음에 떠돌아다니는 동네 아이들을 데려와 씻기고 먹이면서 공부방을 개설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동네 사람들에게 그의 부부는 그야말로 구세주였습니다.

진영(가명·24)이 아빠는 두 달에 한 번 집에 오는 선원이었습니다. 새엄마에게 정을 붙이지 못한 진영이는 초등 2학년부터 가출을 일삼았습니다. 정 목사 부부는 산동네를 배회하던 진영이를 돌봤지만 절도와 폭력 등의 사고를 일으키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면 부모 대신해 경찰서에서 데려오곤 했습니다. 애정을 쏟았건만 소년은 5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입니다. 달동네 목사가 기다리는 것은 부자가 아닌 죄로 얼룩진 청년의 귀향입니다.

그의 교인은 20명도 채 못 됩니다. 그가 운영하는 여수열린지역아동센터 아동 35명 중 30명은 이혼가정, 한부모, 조손가정, 소년소녀가장 등 불우 아동입니다. 동네가 가난하니 교회도 가난하고 목회자도 가난합니다. 예수는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으니 목회자의 가난은 숙명입니다. 그에게 “교회와 목회자가 섬겨야 할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합니다.

“성경 구약에선 고아와 과부 그리고 나그네를 돌보라고 했습니다. 신약에선 이들과 함께 창녀와 세리(세금징수원), 어린이와 장애인 등 소외된 이웃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우리 동네에는 그들이 살고 있습니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잘 섬기진 못하지만 가난한 이웃과 함께 살다 죽으려고 합니다.”

그의 교회도 옮길 뻔했습니다. 2004년 여수의 신도시 장성지구가 조성되자 일부 교인들이 “가난한 동네에 있어봐야 골치만 아프니 우리도 신도시로 이전해 다른 교회처럼 성장해보자”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정 목사는 “우리가 떠나면 가난한 동네 사람들을 누가 돌보고, 방과 후에 와서 공부하고 밥 먹던 아이들을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이들을 두고 떠날 순 없습니다”라고 결정하자 교회 이전을 요구하던 교인들이 떠났습니다.

산동네에 울려퍼진 희망의 오케스트라

‘가난하다고 무시당하는 아이들. 자존감이 무너질 대로 무너지면서 의욕도 희망도 없는 아이들. 어떻게 해야 이 아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가난하고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산동네 아이들. 동네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게 음악이었습니다. 그는 2003년 한 기업의 후원을 통해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비올라 등을 장만하면서 열린합주단(열린챔버오케스트라)을 창단했습니다.

동네 이발사 강준아(당시 63세)씨가 악기를 가르쳤습니다. 강씨는 독학으로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를 배운 뒤 교회 성가대와 합주단을 지휘하는 무명의 연주자 겸 지휘자였습니다. 강씨의 지도 아래 1년 동안 연습한 아이들이 작은 음악회 무대에 섰습니다. 연주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아이들과 가족들은 난생 처음 받아본 갈채와 꽃다발에 자못 흥분했습니다. 당시 이야기로 콧날이 시큰해진 정 목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우한 아이들은 보살핌과 애정을 별로 받지 못한 탓에 정서가 메마르고 산만하며 욕설과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걸핏하면 싸우고 반항하고 물건을 부숩니다. 그랬던 아이들이 악기를 배우면서 몸과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학예회 발표 수준이던 합주단은 지난해 10회 정기연주회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전곡을 연주할 정도로 실력이 향상됐습니다. 2012년부터 전문 음악인인 김사도(44·광신대 음악과 강사)씨의 지도와 객원 연주자가 합류하면서 산동네 오케스트라의 수준이 한껏 높아진 것입니다. 이제는 도처에서 초청할 정도로 지역의 유명한 오케스트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산동네 출신이라고 낙인찍은 이들에게 고함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면서 갖게 된 것은 자부심입니다. 이전에는 산동네 출신이란 낙인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지금은 ‘너희들은 못하는 악기로 우리는 연주한다!’는 자존심과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음악을 배우면서 공부 욕심도 생겼습니다. 합주단 선배들이 음대에 진학하는 것을 보면서 대학 진학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인애 사모의 말입니다. 산동네 합주단 출신 4명이 목포, 광주, 전주 등지의 음대에 진학한 것입니다. 이들은 매주 토요일이면 산동네로 돌아와 동생들을 가르칩니다. 산동네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지만 여전히 가난합니다. 단원 30명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 계층, 한부모와 조손가정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예전의 아이들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연주하는 미래의 베토벤과 모차르트입니다.

열한 살 때부터 공부방에서 바이올린을 배운 박지수(24)양은 국립목포대 음악과를 올해 졸업했습니다. 음대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그는 공부방 동생들의 악기를 지도하면서 시립합창단 바이올린 연주자의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가난한 바이올린 연주자의 말입니다.

“개인 레슨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이 음대에 진학하고 열린합주단 단원이 되어 연주회를 갖는 것은 꿈같은 일입니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이 부잣집 아이들이나 만질 수 있는 악기로 멋지게 연주하는 것을 볼 때마다 묘한 성취감과 희열을 느낍니다.”

바이올린은 불평등한 사회를 상징하는 악기입니다. 가난하면 바이올린을 살 수도, 개인 레슨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정한수 목사의 산동네 오케스트라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일으킨 희망의 쿠데타입니다. 쿠데타에 성공한 그의 오케스트라는 더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을 찾아가 희망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열린합주단은 2009년과 2013년 국제청소년축제에 초청됐고 2010년에는 일본 도쿄, 오사카, 교토 등에서 연주회를 가졌습니다. 2012년부터는 매년 1∼2회 낙도의 섬 주민들을 찾아가 음악을 들려주고, 매년 10차례 이상 노인시설과 병원의 암 환자들을 찾아가 음악으로 위로합니다. 정 목사는 아이들에게 음악만 가르치진 않습니다. 산동네 독거노인들에게 연탄난로를 놓아드리고 공부방 아이들과 함께 연탄을 배달하면서 사랑과 나눔을 가르칩니다.

그는 음악 사회적 기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음대까지 졸업한 단원들이 음악인이 되지 못할 경우 좌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동네 음악가들이 행복하게 일하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싶은 까닭입니다. 연주공간을 만드는 것 또한 소망입니다. 공부방과 교회에서 연습하다 보면 공부와 예배가 뒤섞일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교인의 것만이 아니라 마을의 공동체”

28년 목회에 20명도 채 안 되는 교인. 세속의 시선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목사입니다. 그런 그가 교회를 건축하면서 겪은 일에 대해 들려주었습니다.

교회를 짓는데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산동네 사람들이 벽돌과 모래를 져 날랐습니다. 바쁜 사정으로 건축에 동참하지 못한 이들은 간식 등을 댔습니다. 그의 교회는 마을공동체의 힘으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산동네 사람들은 그의 공동체에 아이들을 맡기고 문제가 발생하면 상담 받으면서 밥상을 같이합니다. 가난하지만 따뜻한 산동네 목회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는 교인만의 공간이 아니라 마을공동체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든 안 나오든 산동네 주민들은 제가 보살피고 섬겨야 할 이웃입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교인이 많고 적은 게 아니라 주민에게 제가 필요한 존재인가 아니면 상대하고 싶지 않은 존재인가 입니다. 산동네 주민들이 저를 필요하다고 해주시니 행복합니다.”

그를 찾아간 지난 5월 10일 하루 종일 봄비가 내렸습니다. 항구의 갈매기들은 비를 피해 어디론가 사라졌고 산동네에는 가로등이 켜졌습니다. 비와 어둠이 내리면 산동네는 더욱 우울하기 마련인데 ‘우리 집 같은 신나는 공부방’을 지향하는 ‘여수열린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표정은 참 밝았습니다. 공부하고, 놀고, 악기 연습하던 아이들은 숲의 새처럼 웃고 떠들다 귀가했습니다. 그의 배웅을 받으면서 떠나는데 교회 십자가가 산동네를 환히 밝히는 것을 봤습니다.

가스펠 라이터 조호진(시인)·사진 김진석(작가)jongg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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