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사르르르∼∼’ 달콤함의 치명적 유혹

불황기에도 박람회·축제 열릴만큼 호황 누리는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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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길어지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소비자들이 달달한 디저트 앞에선 기꺼이 지갑을 열고 있다.

디저트 관련 박람회나 축제가 열릴 만큼 달콤한 디저트를 즐기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오는 11∼12일 서울 난지한강공원에서 열리는 ‘2016 월드 디저트 페스티벌-스윗 오아시스’ 페스티벌 트위터에는 ‘그날이 기다려진다’는 리트윗이 수두룩하다. 디저트만 코스로 판매하는 전문점이 맛집으로 떠오를 만큼 디저트를 아예 주식으로 먹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국내 디저트 시장은 2013년 3000억원 규모에서 2015년 1조5000억원으로 다섯 배나 성장했다. 관련업계는 올해는 지난해보다 45% 이상 성장한 2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즐겨=식사 마지막 단계에서 먹는 음식인 ‘디저트’는 ‘테이블을 치운다’는 뜻의 프랑스어인 ‘Desservir’에서 유래했다.

디저트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그 시대 철학자와 시인들은 향연을 열고 토론을 즐겼다. 토론이 끝난 다음 식사를 함께 하면서 식사 후에 치즈와 말린 무화과 등을 즐겼다고 한다.

디저트는 15세기까지만 해도 부자들만의 것이었다. ‘화이트 골드’로 불리던 귀한 설탕을 첨가한 디저트는 대단히 값비싼 음식이어서 서민들은 감히 넘볼 수 없었다. 디저트가 급속하게 발달한 것은 산업혁명 이후 설탕이 보급되면서부터다. 현대적인 디저트 문화는 요리를 순서대로 내놓는 러시아식 식단이 전 유럽에 퍼졌던 19세기에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고유 식문화에는 디저트 개념 없어=한식에서 떡 약과 다식 식혜 수정과 등이 후식으로 소개되지만 이는 간식의 개념이 더 강했다. 궁중음식연구원 이소영 연구실장은 2일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후식을 올렸다는 기록이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조선시대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푸는 연회에 관한 기록인 ‘진연의궤’에는 약과 다식 당(사탕) 등을 담은 ‘진어과합’을 내놨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는 잔치가 끝난 뒤 갖고 가서 간식으로 먹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 디저트가 들어온 것은 19세기 후반. ‘고종이 식사 후 커피를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일제수탈과 한국전쟁을 치르면서 끼니조차 제때 챙기기 어려운 시기가 이어지면서 우리 식탁에서 디저트는 찾아볼 수 없었다.

1990년대 디저트 시장 형성돼=1972년 케이크 전문회사 ‘샤니’가 컵케이크, 마들렌, 슈크림케이크 등 고급 양과자 30여 종을 선보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디저트의 효시라고 할만 하지만 디저트가 우리 식문화에 자리 잡게 된 것은 88년 서울 올림픽을 거친 이후다. 90년대 국민 소득이 늘고, 해외여행자가 증가하고, 조기유학 붐이 일면서 디저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베이커리 브랜드 파리크라상(1986)과 파리바게뜨(1988)가 문을 열면서 디저트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2000년 중반 확산된 커피문화는 디저트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스타벅스’ ‘커피빈’ ‘투썸플레이스’ 등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들은 커피와 함께 곁들여 먹을 수 있는 각종 조각 케이크 등 디저트류를 판매했다. 투썸플레이스는 ‘프리미엄 디저트 카페’를 표방하며 120여종의 디저트를 팔았다. 디저트가 하나의 문화로 인식되면서 가공 디저트 전문 브랜드도 등장했다. 2000년 CJ제일제당이 국내 식품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가공 디저트 전문 브랜드인 ‘쁘띠첼’을 론칭했다.

글로벌 디저트 브랜드 상륙=호텔신라는 2010년 프랑스 최상급 디저트 브랜드 ‘피에르 에르메 기획전’을 열었다. 당시 호텔신라 베이커리 앞에는 아침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당시 가장 인기를 끈 것은 마카롱이었다. 앙증맞은 크기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마카롱은 특히 여심(女心)을 홀렸다. 호텔을 중심으로 불었던 마카롱의 열풍은 디저트 열기에 불을 지폈다.

디저트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자 백화점들은 디저트 매장을 열기 시작했다. 신세계백화점이 2013년 오픈한 일본 롤케이크 브랜드 ‘몽슈슈’의 대성공으로 백화점들은 국내외 유명 디저트 브랜드 모셔오기에 팔을 걷어부쳤다. 지난해 개장한 현대백화점 판교점은 1만9800㎡ 규모 식품관의 절반 가량을 디저트존으로 구성했다. 롯데백화점은 올초 소공동 본점 지하 식품관 내 디저트 매장수를 21개에서 38개로 늘렸다. 백화점들이 디저트 매장에 공을 들이는 것은 그 자체 매출도 높지만 소비자들을 불러 모으는 유인책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지난해 무역센터점의 제품 카테고리별 매출 유발효과를 분석한 결과 디저트는 66.2%로 화장품(47.1%), 여성의류(35.2%)보다 훨씬 높았다”고 말했다.

동네 편의점도 다양한 제품 판매=백화점의 디저트류는 호텔보다는 싸지만 여전히 부담스런 가격이다. 디저트 시장 경쟁에 뛰어든 편의점은 접근성과 가성비를 내세워 몸집을 키우고 있다. ‘Cafe GET’(CU), ‘유어스’(GS25) 등 편의점들은 자체 디저트 브랜드(PB)까지 내놓으면서 전문점 못지않게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류를 판매하고 있다.

김병규 CJ 제일제당 쁘티첼팀 총괄팀장은 “디저트를 즐기기 위해 굳이 전문점이나 백화점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접근성과 합리적 가격대의 고품질 제품을 선보인다는 가성비 측면에서 편의점 디저트 시장의 성장세는 지속될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왜 디저트인가=신세계백화점의 몽슈슈는 2013년 당시 롤케이크 하나에 2만원이나 했지만 이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수십 명이 줄을 설 정도였다. 그냥 돌아가는 손님들이 많아지자 신세계측은 구매물량을 1인당 2개로 제한했을 정도다. 현대백화점 판교점 매그놀리아도 지난해 오픈 당시 손님이 줄을 서서 구입하면서 한달에 6억원어치나 팔렸다. 150g짜리 초코바나나푸딩이 4800원이나 했다.

사실 디저트의 호황은 남녀노소 모두 다이어트에 열중하는 요즘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다. 달콤한 크림과 초콜릿의 열량은 한끼 식사보다 높다. 그리고 가격도 만만치 않다. 아이 주먹만한 컵케이크가 김밥 한 줄보다 비싸다. 그럼에도 디저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LG경제연구원의 황혜정 연구원은 ‘절제된 소비의 작은 탈출구, 작은 사치가 늘고 있다’는 보고서를 통해 그 이유를 작은 사치로 풀이했다. 황 연구원은 “매출 성장세가 둔화되는 백화점과는 대조적으로 백화점 내 고급 디저트 매장의 매출은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저성장이 고착되면서 불황이 길게 이어져 소비 여력 없이 절약하는 생활을 하다가 피로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위안을 얻고자 작은 사치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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