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Wide&deep] 해운업, 살려야 하나 버려야 하나

구조조정 2라운드 어떻게

[Wide&deep] 해운업, 살려야 하나 버려야 하나 기사의 사진
현대상선이 용선료 협상과 채무조정에 사실상 성공하며 구조조정 단계의 첫 관문을 넘어섰다. 한진해운의 용선료 협상 이슈가 남아 있지만, 현대상선이 한숨을 돌리면서 해운업 구조조정은 제2막으로 접어든 모양새다. 첫 단추를 꿰었을 뿐 본격적인 해운업 구조조정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정부 지원을 더 늘려 경쟁력 강화에 나설지, 업황을 고려해 일단 몸을 사려야 할지, 복잡한 선택지들이 정부와 구조조정 당사자들에게 놓여 있다.

해운업, 포기하면 안 되나

해운 업계 관계자, 학계 등에선 이번 기회에 한국 해운업의 장기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조선업과 달리 해운업을 국가가 방관해선 안 된다는 논리가 이를 뒷받침한다. 노동집약산업인 조선업의 경우 업종 자체가 인건비가 싼 저개발국가로 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조선업 주도권은 과거 영국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국도 중국 등 후발 주자의 추격을 뿌리치기 버거운 상황이다. 조선업은 규모를 줄여놓고 첨단 선박 등에 집중하는 식으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정부 지원 없이 조선업 스스로 살아남도록 내버려둬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해운업은 일단 덩치를 줄여놓으면 해외 선사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경쟁력 약화로 해운동맹에 끼지 못하면 완전히 도태될 수도 있다. 북한 등 안보 리스크도 감안해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북한 미사일 이슈가 확대돼서 아무도 한국에 기항하려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국적 해운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해운사가 살아남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한국 수출 기업들에 돌아온다는 얘기다.

대형 선박 도입 필요할까

해운업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는 대형·최신형 선박 도입 등이 꼽힌다. 한 번에 컨테이너를 대량으로 나를 수 있는 대형 선박을 운용하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나이스신용평가 이재윤 연구원은 “최신 선박은 기름을 덜 먹고 탄소배출도 줄고, 기본적으로 속도 자체가 높다”며 “예전 선박을 사용하다 보면 단가경쟁력에서 해외 선사들에 계속 밀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선사들은 현재 컨테이너 1만4000개 이상을 실을 수 있는 대형 선박이 한 척도 없다.

문제는 들쭉날쭉한 해운 업황이다. 벌크선 시황을 나타내는 발틱운임지수(BDI)는 지난 2월 사상 최저치인 290을 찍었다. 프랑스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는 지난해 극심하게 벌어졌던 수요와 공급 차이가 2016∼17년에는 다소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운임 회복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 연구원은 “업황이 빠르게 좋아진다면 대형선 도입이 맞겠지만 워낙 변수가 많다”며 “시장 회복이 안 되면 대형선을 도입해도 계속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선 도입 자체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쪽도 있다. 신영증권 엄경아 연구원은 “10% 이상 점유율을 가진 해외 선사들도 대형선을 통해 차별적인 경쟁력을 보이고 있는 건 아니다”며 “대형선을 들여온 만큼 영업을 잘할 수 있을지, 배를 얼마나 채울 수 있을지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업황과 구조조정 진행 상황 등을 지켜봐야지 벌써 대형선 도입 주장이 나오는 건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선박펀드, 혈세 지원일까

해운사에 선박펀드 등을 통한 금융지원을 얼마냐 하느냐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지난해 12억 달러 규모의 선박펀드 조성안을 내놨다. 이 중 30%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투자한다. 특정 산업을 위한 혈세 투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오히려 경쟁력 강화를 위해 금융지원 규모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지원을 통해 해운사가 선박을 발주하면 조선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덴마크 독일 프랑스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이 자국 선사들에 금융지원을 한 사례들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한 증권사의 팀장급 애널리스트는 “해외에서는 이미 선박 펀드가 100년 정도 오랜 기간 운영되면서 계속 수익을 냈다”며 “이런 일이 터져서 논의가 나오는 것 자체가 이미 늦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이투자증권 하준영 연구원은 “펀드를 투입해서 해운사가 살아나면 거기서 나오는 이익이 더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관련기사 보기]
은행, 조선·해운 부실채권 31조 넘는다
産銀 8조6000억·輸銀 4조2000억·농협 4조 '뇌관'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