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송세영] 개신교와 빅텐트 기사의 사진
‘빅텐트’는 정치적·이념적으로 다양한 견해를 포용하는 정당을 의미한다. 보수정당과 중도정당, 중도정당과 진보정당이 정치적·이념적 차이를 인정하는 전제 하에 하나의 정당으로 통합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정치에서도 특정 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거나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경우 빅텐트론이 득세하곤 한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이 분열됐을 때도 어김없이 빅텐트론이 등장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력 대선 후보들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다보면 또다시 빅텐트론이 대두될 것이다.

빅텐트의 문제는 그 자체가 목표나 가치가 아니라 수단 내지 도구의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자칫하면 정치적 목적을 위한 ‘야합’이나 ‘정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정당정치의 근간을 위태롭게 한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차이도 부풀려 분열의 명분으로 삼는 한국정치 상황에선 긍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 대화와 협상의 묘를 발휘하고 내부 민주주의만 보장된다면 분열에 따른 비효율과 난맥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부끄럽게도 정치권만큼이나 분열이 심한 한국교회도 한때 빅텐트를 구상한 적이 있다. 2000년 무렵, 진보 성향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보수 성향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아우르는 통합 기구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지금도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에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NCCK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한기총을 독재정권과 결탁한 세력 정도로 여겼다. 한기총 일각에선 NCCK를 친북 좌파 운동권 집단 정도로 치부했다. 이런 두 연합기관이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고 믿고 추진했으니 ‘참 담대했다’고밖에 표현할 말이 없다.

하지만 당시 구상을 들여다보면 그리 터무니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통합을 추진한 측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하나의 지붕 아래 모두 들어가되 독립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각각의 정체성을 살리면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두 연합기관에 속한 23개 교단 대표들은 2000년 7월 ‘한국기독교연합준비위원회’까지 발족시켰다. 언론에서는 ‘보수와 진보를 망라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가 출범할 전망’이라는 기사가 쏟아져나왔다.

성사만 됐다면 오늘날 한국교회의 대외적 모습이나 평가는 많이 달라졌을 게 분명하다. 정치권에서 ‘가톨릭이나 불교와 달리 개신교는 어디를 창구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사회공헌 활동은 가장 많이 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홀대받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단·사이비집단이 활개치며 한국교회를 조롱하고 공격하는 일도 상상 못했을 것이다. 나눔과 구제, 선교 등에서도 효율과 집중, 시너지 효과가 가능했을 것이고 한국사회도 아마 지금보다는 훨씬 더 살 만한 곳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통합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저런 난관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통합을 향한 의지가 난관들을 넘어설 만큼 강하지 못했다는 게 주된 원인일 것이다.

16년이 흐른 지금은 상황이 더 어렵다. 한기총에서 한국교회연합이 분리돼 나와 연합기관이 아예 3개로 늘어났다. NCCK는 고사하고 성향이 비슷한 한기총과 한교연의 통합도 지지부진하다. 그 틈을 타 이단·사이비집단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안티 기독교 세력의 공격도 거세지고 있다.

내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최고의 개혁은 ‘하나 됨’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통합을 촉구하는 성명도 잇따르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 리더들이 응답해야 할 차례다. 한국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답해야 한다.

송세영 종교부장 sysh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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