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코카서스 3국의 도시들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코카서스 3국은 강국들에 둘러싸여 온갖 수난을 겪은 역사를 지닌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그루지야) 세 나라를 일컫는다. 19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세 나라는 러시아 혁명기에 잠시 독립했었으나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될 때까지 소비에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으로 오랜 세월 소련의 영향 아래 있었다.

온통 노랗게 물든 낙엽들이 차창 밖으로 휘날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맨 처음 간 곳은 나프탈렌이 처음 만들어졌다는 아제르바이잔이다. 나는 나프탈렌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향수가 느껴졌다. 그 냄새를 마지막으로 맡아본 건 언제였을까. 그 이름이 아득한 추억을 몰고 오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의 구(舊)시가지를 걷는다. 구불구불한 미로 사이로 오래된 집들의 풍경이 아름답다. 아제르바이잔이 불의 나라라면 수도 바쿠는 바람의 도시라 한다. 고부스탄 지역의 2만년 전 암각화들 속에는 힘세고 중요한 존재는 크게 그려져 있고, 약한 존재는 작게 그려져 있다. 이를테면 소는 크게, 말은 작게 그려져 있다. 원시시대를 지나 농경시대에 접어들어 가축을 치면서부터는 동물들이 사람보다 작게 그려져 있다. 크기란 얼마나 심리적인 개념일까? 크게만 보이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지금 가면 아주 작은 것처럼. 조용한 마을 쉐키로 이동하면서 300년 묵은 실크로드 상인들의 숙소 캐라반사라이에 들러본다. 한쪽 구석에 지지직거리는 70년대 아날로그 텔레비전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아제르바이잔 언어가 흘러나온다. 닫히지 않는 화장실 문, 낡디낡은 소파와 침대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300년 된 건물의 풍치는 아득하다. 호두나무숲을 이루는 아름다운 길을 달려 국경을 통과하면 기독교와 와인의 원산지 조지아가 나타난다.

조지아 남자들은 하루 종일 와인을 마신다고 했다. 수도 트빌리시에서 만두를 먹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힝칼리’라 불리는 육즙이 입안에서 향긋하게 터지는 만두의 맛은 조지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조지아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다비드 가레자 지역의 동굴수도원 라브나 수도원도 빼놓을 수 없다. 절벽에 붙어 있는 우브르노 동굴수도원군을 답사하며 가을바람에 흔들렸다. 신들의 요새라 불리는 우플리스치케에서 미로 같은 신비로운 동굴도시들을 답사하는 것도 행복했다.

그렇게 신비로운 종교적인 영역을 떠나 스탈린의 고향 고리에 도착했다. 20세기의 독재자 스탈린은 1879년 고리시에서 태어나 신학교를 졸업한 열등감 많은 학생이었다고 한다. 1921년 소비에트 혁명이 성공하고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스탈린은 정권을 잡는다. 스탈린 정권 당시 비공식적으로 10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다. 스탈린 기념관을 둘러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는다.

아름다운 조지아 군용도로를 타고 캅카스 산맥의 장엄한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카즈벡산을 바라본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높은 절벽 위에 설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 30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 므츠헤타에서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즈바리 수도원과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등을 둘러보는 일은 경이롭다. 트빌리시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아르메니아를 향했다.

낙엽이 노랗게 물든 아르메니아의 가을숲에 붉은색은 없었다. 새빨갛게 타오르는 한국의 단풍 풍경이 그립지는 않았다. 그저 온통 노란 아르메니아의 산 풍경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얼마나 서러워서 노랗게 되었나? 끝없는 산들이 자연산 가을 가발을 덥수룩 쓰고는 나를 맞아주었다. 설악산, 내장산, 금강산, 북한산, 내 나라의 모든 산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남은 건 아르메니아, 아르메니아, 갑자기 오래도록 닫힌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 노란 낙엽들의 길 끝에 하얀 설산이 나타났을 때 나는 숨이 막혔다. 산다는 게 붉게 물든 단풍 산과 노랗게 비명을 지르는 낙엽 길에서 하얀 설산으로 이어진 산행이라면 구불거리는 산악지대 사이사이의 수많은 사연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잠시 접어놓고 그저 풍경을 즐기는 거다. 그런 마음속의 소리가 들려왔다. 경이로운 수도사들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동굴수도원들을 돌아본 뒤 이곳으로 여행 온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복잡해진 마음을 하얗게 비워보라고 마음속의 또 다른 내가 속삭였다. 예레반 시내의 아르메니아 대량학살 기념관에서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학살보다 더 잔인했다는,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역사를 보았다. 핍박받은 과거를 지닌 우리는 형제다. 예레반 시내 한복판의 공화국 광장을 거닐던 기억이 생생하다. 떠나는 전날 밤에는 공화국 광장 하늘에서 불꽃놀이가 한창이었다. 마치 다른 우주에 떨어진 듯 신기했다.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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