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주헌] 방폐장 건립, 서둘러야 한다 기사의 사진
정부가 고준위 방폐물 처리시설 부지를 2028년까지 확정하고, 2053년까지 건립한다는 목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안)’을 내놓았다. 한마디로 원자력발전소의 쓰레기처리장을 2053년까지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쓰레기처리장도 없는 채로 원자력 발전을 해 왔다는 말인가? 그동안 원자력발전소에서 쏟아져나왔을 방사성 폐기물들은 어떻게 처리했나? 도무지 믿기 어려운 의문이 꼬리를 문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을 마련하지 못한 채 38년째 원자력 발전을 이어오고 있다. 전체 전력 생산의 30% 이상을 감당할 정도로 중심 전원인 원전에서 매년 배출되는 750t가량의 사용후핵연료는 오갈 곳 없이 원자력발전소 내 수조에 임시 보관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임시저장조도 포화 시점에 속속 도달하고 있어 대략 2028년 이후에는 더 이상 보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이는 마치 쓰레기매립장을 마련하지 못한 채 생활쓰레기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집안에 보관해오다 이제 집안 전체가 쓰레기봉투로 차올라 더 이상 보관할 수 없게 된 꼴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화장실 없는 집에 살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도 원전 가동 직후부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련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논의만 무성했을 뿐 이번처럼 구체적인 로드맵을 내놓은 적이 없었다.

정부의 무책임이 원인이었다. 방폐장 건설은 기술적으로 안전하더라도 지역적으로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따라서 역대 정부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마치 폭탄 돌리기 하듯 사용후핵연료를 수조에 임시 보관하면서 다음 정부로 그 책임을 넘겨왔던 것이다.

무책임하게 미래세대에 부담을 더 이상 떠넘겨서는 안 된다. 원전을 포기하든가 방폐장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물론 원전 포기는 값싼 전력 소비의 포기를 의미한다. 더욱이 기후변화 이슈와 현재 신재생에너지의 불완전성, 비경제성을 고려할 때 당분간 원자력의 화석에너지 혹은 신재생에너지로의 대규모 대체는 현실적이지 못한 대안으로 인식하는 것이 합리적 판단이다. 결국 원전의 현실적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방폐장 마련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번 방폐장 건립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 제시는 책임 있는 정부의 용기 있는 결단이다. 그러나 로드맵은 마련되었지만 고준위 방폐장 건립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원전에서 버려지는 장갑, 옷가지 등과 같은 중저준위 방폐장 부지 선정에도 18년이 소요되었는데, 사용후핵연료와 같은 고준위 방폐장 부지를 12년 만에 선정하겠다는 목표는 당연히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임시 수조의 포화 예상 시점을 고려하면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목표 시간 내 부지를 선정, 방폐장 건설을 시작해야 한다.

실제 방폐장 건립 과정은 로드맵을 정확히 따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근모 전 과기처 장관의 말처럼 정보의 투명성, 절차의 투명성, 소통의 투명성을 초지일관 지켜나간다면 로드맵을 자주 벗어나겠지만 로드맵 주변을 따라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정부가 몇 차례 바뀌더라도 이번 로드맵은 끝까지 지켜지길 바란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되새겨볼 시점이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

박주헌 에너지경제연구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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