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DJ “민주화를 위해 감옥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생각” 기사의 사진
DJ는 1985년 2월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55차례나 가택연금을 당했다. 200여명의 경관들 감시 아래 친지들도 방문할 수 없었던 연금의 시간들을 사진 속 달력이 말해주고 있다. 1987년 6월 7일까지 ‘엑스’ 표시를 해둔 달력 앞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가 전화를 받고 있다. 출처=고난의 언덕에 핀 꽃 ‘김대중’(조한서 지음)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램버트슨 前 주한美부대사 보고서에 나타난 김대중의 고뇌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화를 이끈 거인이었다. 동시에 정치적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서 고뇌했던 개인이기도 했다. 민주화에 대한 확신은 DJ를 버티게 한 힘이었다.

국민일보는 민주화운동 시기 DJ의 내면을 읽을 수 있는 주한 미대사관 기밀문서를 입수했다. 민주화를 향한 DJ의 자신감과 절망감이 얽혀 있는 귀중한 사료다.

DJ에 대한 족쇄…형(刑)집행정지와 가택연금

DJ는 두 개의 족쇄에 묶여 있었다. 하나는 형집행정지였다. 전두환정권은 DJ에게 내란음모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사형에서 무기징역, 그리고 20년형으로 순차적으로 감형시켰다. DJ가 1982년 12월 미국으로 출국하며 시작된 형집행정지는 6·29선언 직후인 87년 7월 사면복권을 받기 전까지 계속됐다. 4년7개월 동안 그는 형집행정지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정권 입장에서는 DJ를 다시 감옥에 넣는 것도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해서 정치적 자유를 줄 수도 없었다. 형집행정지가 절충점이었던 셈이다. 민주화운동 시기 DJ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발이 묶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가택연금(軟禁)이었다. 전두환정권은 ‘자택보호’ ‘보호조치’ ‘출입통제’ ‘자택연금’ ‘봉쇄조치’ 등 여러 용어를 사용했다. DJ는 85년 2월 미국에서 귀국한 이후 모두 55차례나 가택연금을 당했다. 잠시 해제됐다가 다시 가택연금 당하는 일이 반복됐던 것이다.

DJ와 오찬 내용을 미국 국무부에 보고한 주한 미국 부대사

86년 3월 1일 데이비드 램버트슨 주한 미국 부대사가 부임했다. 이 당시 DJ는 형집행정지로 당적(黨籍)을 갖지 못한 채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을 맡고 있었다.

램버트슨 부대사는 82년 1월부터 84년 4월까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냈다. DJ가 미국에 머물던 시기와 겹친다. 램버트슨은 “김대중과 다섯 번째 만났다”고 썼다.

DJ는 램버트슨의 부임을 환영하기 위해 86년 5월 23일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DJ의 최측근 권노갑 전 의원이 배석했다. 램버트슨은 여기서 오간 대화를 국무부에 보고했고, 국민일보는 이 문서를 입수했다.

노태우, DJ를 “그자”로 지칭

이들이 오찬을 함께한 시기는 여권이 반격을 가하던 때였다. 신민당은 86년 2월 12일 대통령 직선제를 목표로 한 ‘1000만 개헌 서명운동’을 전격적으로 꺼내들었다. 기습에 당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4월 30일 “88올림픽 등 대사를 치른 뒤 개헌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만 여야가 국회에서 합의한다면 재임 기간 중에라도 헌법을 개정할 용의가 있다”고 역습을 가했다. 반전카드는 예상 외로 먹혀들었다. 신민당은 장외투쟁을 중단하고 여당과 합의를 모색하라는 압력이 거세졌다. 야당 내부에서도 협상론이 고개를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5월 21일 외신기자클럽 회견에 참석해 “민정당은 직선제 개헌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또 YS 당시 신민당 상임고문을 만날 수 있지만 DJ는 형집행정지 상태이기 때문에 만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노 대표는 DJ를 “그자”로 표현하며 깎아내렸다. 이 회견 이틀 뒤 DJ와 램버트슨이 점심을 함께한 것이었다.

DJ의 자신감…“내각제 해도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

램버트슨은 “김대중은 여당의 최근 제안을 진실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고 썼다. 문서에서 DJ는 “그들(여권)은 타협을 원한다고 말하고, 당신들(미국)은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만약 여권이 진실하다면 노태우 대표가 그렇게 단호하게 대통령 직선제 제안을 묵살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직선제를 향한 한국 국민들의 열망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는 (대통령을 직접 뽑기 위해) 한 사람이 한 표를 행사해야 하며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를 가져야한다”고 강조했다.

DJ는 “일부 한국과 미국 관리들이 내가 직선제를 고집하는 것은 그것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면서 “이것은 난센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나는 국회의원을 위해 출마할 수 있으며 내가 원한다면 내각책임제 하에서도 권력을 획득할 수 있다”고 강한 자신감을 표출했다.

램버트슨은 “김대중이 직선제를 요구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어야 했던) 71년에도 국민들이 원했고, 86년에도 국민들이 직선제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DJ와 미국 간의 팽팽한 긴장…DJ의 불만 토로

DJ가 주한 미대사관 고위 관리들을 비판한 부분도 문서에 적혀 있다. 램버트슨은 “김대중이 그 관리들의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DJ는 “미대사관 관리들이 한국을 방문한 미국인들에게 타협을 거부하는 경직된 태도 때문에 김대중이 민주화의 장애물이라고 말했다는 얘기를 듣고 괴로웠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특히 85년 5월 대학생들의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과 관련한 “미대사관 관리들의 경멸적인 발언이 가장 가슴을 아프게 했다”고 DJ는 털어놓았다. 이 당시 DJ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대학생들을 설득하는 편지를 보냈다. DJ는 “그러나 미대사관 고위 관리가 ‘김대중이 학생들의 점거를 부추기는 또 다른 편지를 은밀히 보냈다’고 비난하는 것을 들었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해보라”고 울분을 토했다.

램버트슨은 “그런 두 번째 편지는 없었으며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런 말을 하고 다닌 미대사관 관리는 없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DJ, “절망감 느낀다…감옥에 있는 것이 한국 민주화에 더 기여”

오찬이 끝날 무렵 DJ가 “증가하는 폭력, 학생들의 과격주의, 반미감정, 슐츠 장관 방한 이후 한국민들의 ‘절망감’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토로했다고 문서는 기록했다.

이어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최근 외롭고 절망감을 느낀다. 나는 연설하는 것을 방해받고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다. 내 권리들은 회복되지 않았다. 당신들은 나에게 정부와 타협하라고 설득하지만 그들은 심지어 나를 만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만약 게리 하트(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야당 의원)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고,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이후 정치활동이 금지됐다면 그에게 타협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DJ는 “요즘 나는 감옥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그곳의 삶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감옥에서) 나는 여전히 독서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감옥에 있는 것이 아마도 내가 한국 민주화를 위해 더 기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자유인이지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나. 나는 무력하다. 나는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고 털어놓았다.

램버트슨, “김대중의 ‘위협’ 해석 힘들어…처한 상황은 이해”

램버트슨은 “한국정부가 더욱 큰 양보(예를 들어 김대중의 사면복권)를 하지 않는다면 김대중은 이 시점에서 여권과 타협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인상을 줬다”면서 “감옥에 돌아가고 싶다는 등 ‘과감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김대중의 ‘위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해석하기는 힘들다”고 보고했다. 이어 “전두환이 최근에 보인 유연한 행보와 여당과 대화를 재개하면 어떤 것이 얻어지는지 살펴보자는 주장이 야권 내부에서 높아지는 데 대해 김대중이 위협받고 있음을 우리는 느낀다”고 썼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이 결과에 상관없이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는 말로 보고를 마쳤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美정부 기밀해제 문서 단독 입수 모두 보기 클릭]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