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자동차 과소비 방치한 미세먼지 대책 기사의 사진
한정된 공유자원인 우물물을 가구마다 하루 한번씩 떠가도록 해놓고 용기 크기를 제한하지 않거나 용기 크기만 제한하고 취수 횟수를 제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경우나 우물은 규제 당국의 계획보다 일찍 고갈될 것이다. 이럴 때 우물물에 적정 가격을 매기는 것이 효율적이다. 경유는 휘발유에 비해 세금 부담이 훨씬 더 적다. 따라서 경유가격을 상당히 올리지 않는 한 늘어나는 경유승용차 신규 수요와 도심주행 수요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뻔하다. 승용차 통행량을 못 줄이고, 세수만 줄인 채 철회해버린 서울시의 승용차 요일제는 그런 ‘멍청한 규제’의 전형이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미세먼지 종합대책도 멍청한 규제를 담고 있다. 기본 방향부터 틀렸다. 자동차건, 화력발전소건 대체하겠다는 계획만 있고 줄이겠다는 계획이 없는 것이다. 자동차 구매를 줄이자는 게 아니다. 깨끗한 공기가 공짜가 아닌 만큼 불요불급한 개인승용차 운행을 줄이도록 하는 등 고통분담을 요구해야 한다. 교통수요 감축에 효율적인 가격 정책은 ‘서민부담’을 핑계로 다음 정부로 떠넘겼고 저공해 연료, 친환경차 대체 계획은 천문학적 재원의 조달 계획이 없으니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같은 차라도 오염물질 배출량은 차 크기와 노후화 정도 및 주행거리에 대체로 비례한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과소비는 유별나다. 중·대형차 대 경·소형차 비중은 8대 2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2∼3대 8∼7로 정반대다. 우리나라 차량의 대당 연간 주행거리는 1만6024㎞(2014년)로 선진국보다 1.5∼2배 더 길다. 선진국 대도시 가운데 비싼 도심통행료나 주차비 부담을 지우지 않는 곳은 찾기 어렵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은 그런 페널티와 배출가스 농도 규제 덕분에 미세먼지 연평균 농도가 서울(46㎍/㎥)의 절반 이하인 20㎍/㎥ 안팎이다.

미세먼지의 양만 따지면 경유차 비중이 가장 크지는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건강에 더 나쁜 초미세먼지(PM2.5)의 경우 수도권 발생량의 40%가량이 경유차와 경유를 쓰는 건설기계, 선박 등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산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도 경유차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다.

화력발전소 대책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가동 후 40년 이상 된 화력발전소 3곳은 폐쇄하거나 LNG 등 친환경연료로 바꿔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2029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20기를 추가로 건설하겠다는 장기계획은 수정되지 않았다. 화력발전소를 없애가는 세계적 추세와는 반대로 그 비중을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29.1㎍/㎥로 OECD 34개 회원국을 포함한 38개국 중 꼴찌다.

정부 대책에는 깨끗한 공기를 위한 비용을 부담해야 할 주체가 안 보인다. 수도권 진입이 제한될지 모를 경유트럭이 유일한 예외다. 경유승용차에 대한 혜택 철폐는 표도 안 날 정도로 미미한 것이다. 등록자동차 중 경유차 비중은 50%에 육박한다. 경유가격을 상당 폭 올리지 않고서 미세먼지가 잦아들기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다. 미세먼지 배출량을 비용 대비 효율적으로 당장 크게 줄일 수 있는 대상은 경유승용차다. 경유버스와 노후트럭 조기 폐차에는 막대한 돈이 들기 때문이다.

신규 판매 차종의 크기를 줄이려면 작년 1월 시행을 앞두고 2020년까지 유예된 ‘저탄소차협력금제도’를 보완해 당장 시행하는 게 묘수다. 무엇보다 경유가 인상 방침과 인상폭을 연내에 밝혀야 한다. 이는 2018년 현행 교통에너지환경세가 개별소비세로 대체되기 앞서 자동차제작사와 소비자에 대한 시그널로서 중요하다. 자동차 과소비 행태를 그대로 두고 깨끗한 공기를 바랄 수는 없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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