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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이건우] 하버드대 총장의 오류

“성별보다 관습 벗어난 창조적 사고가 성공 요인… 여성의 공학계 진출 독려해야”

[시사풍향계-이건우] 하버드대 총장의 오류 기사의 사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임기 중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이공학 분야의 고위직에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드문 이유를 제시한 적이 있다. 고위직에 오르려면 장시간 근무는 당연하고, 업무시간 외에도 언제나 일에 관련된 중요한 문제를 고민해야 하며, 긴급한 상황에서는 개인 일정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성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어 수학과 과학 능력에는 남녀 간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서 수학·과학 분야의 최상위권에 여학생보다 남학생이 훨씬 많다는 점을 또 다른 근거로 들었다. 즉 사회화 과정의 남녀 차이나 성차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니고 기본적으로 역량이 아주 우수한 여성의 비율이 낮기 때문에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거라고 서머스는 주장했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보직을 맡으면 수많은 회의를 위해 일찍 출근해야 하고 귀가도 늦다. 수시로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전화벨이 울린다. 내가 학장단을 구성할 때도 어린 자녀를 둔 여성 교수에게 그러한 짐을 져달라고 부탁할 수 없었다. 학계에서 인지도를 높이거나 흐름을 빨리 파악하려면 반드시 국제학회에 참석해야 하지만 아이와 떨어져 있어야 하기에 힘들다. 그러나 이는 이공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며 전통적인 남녀 역할 분담은 어느 분야에서건 여성이 업무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05년 ‘여성이 이공학 고위직에 오르지 못하는 이유’를 저렇게 말할 당시 서머스는 하버드대학 총장이었다. 남녀의 능력 차이를 언급한 부분이 성차별주의자라는 비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총장직에서 사임했다.

남녀의 생물학적인 특성이 다른 것을 애써 부인할 필요는 없지만, 기능 영상을 이용한 뇌 연구 결과들은 개개인의 다양성이 성별에 따른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내 딸이 옆집 아들보다 과학과 수학을 잘하는 게 당연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통계적으로 수학·과학 상위 0.1%에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많다고 해도 ‘큰 수의 법칙’에 의해 상위 0.1%에 드는 여학생은 반드시 있다.

우리 딸이 과학과 수학을 제일 잘하지 못하더라도 이공계열을 전공하겠다고 할 때 결코 막을 필요는 없다. 과학과 수학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 공학 분야에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특히 앞으로는 주어진 문제를 잘 푸는 사람보다 체계나 관습에서 벗어나 창조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성공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남녀 평균 임금 차이가 가장 크다. 고용률 또한 큰 차이가 난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창의적 기술 없이는 경제 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창의성은 다양성에서 나오며, 이미 여러 연구 결과에서 성별의 다양성이 혁신을 이끄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촉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직의 다양성을 갖춘 회사는 고객을 이해하고 직원의 만족도와 의사결정 과정을 향상시키기에 유리하다.

최근 정부가 여학생의 공학계열 진학을 촉진하고 성공적으로 사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우려는 바람직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하려면 이 땅의 모든 부모와 교사들이 우리의 딸들에게 공학을 기피할 필요가 없다고 살짝 밀어(nudge)주어야 한다. 여성의 진출이 많아지면 자연히 여성의 근무 여건도 좋아지고 성차별도 줄어들 것이다. 참고로 회원 수가 43만여명으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공학 단체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는 역대 세 번째로 여성 회장을 선출했다.

이건우 (서울대 교수·공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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