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고승욱] 비주류 샌더스에게 보내는 환호 기사의 사진
미국 대통령 선거 예선이 끝났다. 이미 슈퍼대의원으로 민주당 매직넘버를 달성한 힐러리 클린턴은 캘리포니아에서 압승하면서 당당하게 승리선언 연설을 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미 승부는 끝났다. 사실 샌더스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전포인트였다. 미국 동쪽 끝, 크기가 경상도보다 작은 버몬트주에서 갑자기 나타나 1년여 동안 미국 전역을 휘젓고 다녔다. 격의 없이 학생과 대화하는 노교수처럼 친근하게 다가서더니 갑자기 금테안경을 고쳐 쓰며 신자유주의를 비난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킨다며 대기업의 거액 기부를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공화당 지지자의 기부금까지 접수한 ‘능력자’ 클린턴을 마지막까지 위협했다.

샌더스는 사실 민주당 당원이 아니다. 미국 상원 홈페이지는 샌더스를 버몬트주 무소속(independent) 의원이라고 소개한다. 지난해 2월 바버라 박서 상원의원이 트위터에서 “버니는 언젠가(some day) 민주당원이 될 것”이라고 비꼬자 샌더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Of course I am a Democrats)”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워싱턴DC 샌더스 사무실은 지금도 ‘샌더스, 무소속 상원의원’이라고 적힌 공문을 발송한다. 우리로 치면 중앙당 격인 민주당 전국위원회(DNC)의 공식 입장은 “당의 이념과 비전에 동의한다면 당원이든 아니든 경선에 참여할 수 있다”이다. 샌더스가 상원의 유일한 사회주의자이든 아니든,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부르든 말든, 표를 얻기 위해 유세장에서만 민주당원이라고 주장하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샌더스가 민주당을 왼쪽으로 끌고 가려고 당원인 척한다는 비난이 거셌다. 기득권자인 클린턴의 치부를 드러내는 게 목적이라는 분석도 쏟아졌다. 그러나 지난 2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시작된 경선에서 그런 비난은 수많은 의견 중 하나에 불과했다. 투표권을 가진 당원과 유권자에게는 중요한 판단의 근거였겠지만 그 때문에 당이 샌더스를 배척하지 않았다. 비주류를 걷어차지 않고 마지막까지 포용해 조직의 힘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빼고 나누고 인수분해까지 불사하는 정치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부러운 시스템이 아닐 수 없다.

샌더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다. 흙수저 자괴감에 분노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현실에 좌절한 젊은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샌더스를 닮았다는 말이 덕담인지 욕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질 정도로 정치권에서도 관심이 많다. 샌더스가 클린턴의 러닝메이트가 되지 않는다면 그는 우리 시야에서 곧 사라질 것이다. 2004년 대선 민주당 경선후보로 나왔던 하워드 딘 버몬트 주지사를 여태 기억하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다. 자전거 전용도로에 불법주차한 자동차 때문에 정치에 입문한 딘은 경선 초반 순식간에 떠오른 인물이다. 인터넷을 이용해 여론을 수렴하는 선거운동이 주효했다. 인터넷만으로 3개월 동안 후원금 80억원을 모았다. 딘 캠프의 인터넷 책임자는 2008년 버락 오바마 캠프에서 SNS 전략을 지휘했다. 딘은 잊혀졌지만 그가 개발한 전략은 지금 우리 선거에서도 유효하다.

캘리포니아 경선에서 패한 뒤 샌더스는 ‘버니’를 연호하는 지지자에게 정치혁명에 동참해 고맙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사회정의, 경제정의, 나아가 인종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미국의 미래라고 주장했다. 그때마다 터져나오는 환호에 연설을 제대로 잇지도 못했다. 뚜렷한 목표와 분명한 비전은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하다. 일 잘하는 모범생인 클린턴에게 부족한 덕목이기도 하다. 부족함을 채워주는 새로운 유전자. 비주류의 힘이 바로 이것이다. 고승욱 국제부장 swk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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