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년 역사 생생… 백령도의 ‘어머니 교회’

남한 최초의 자생 교회 백령도 중화동교회를 가다

118년 역사 생생… 백령도의 ‘어머니 교회’ 기사의 사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중화동교회의 전경. 검붉은 벽돌로 지어진 교육관과 언덕 위에 세워진 중화동교회 예배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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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대기가 끝나고 연둣빛 모가 오와 열을 맞추고 있는 백령도의 6월 논 풍경을 지나자 하얀 십자가를 검붉은 벽돌이 감싸 안고 있는 중화동교회(조정헌 목사) 교육관이 보였다. 교육관 뒤편에선 160여년 동안 해풍을 맞으며 자리를 지켜온 팽나무가 굽이굽이 꺾인 나뭇가지로 예배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켰다. 계단 앞엔 천연기념물 제521호로 지정된 높이 6.3m의 연화리 무궁화 나무가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천연기념물로서는 국내 단 두 그루 밖에 없는 무궁화 나무다.

계단을 올라 들어선 예배당 안은 따뜻했다. 그동안 몇 차례 재건축이 이뤄졌지만 1898년 10월 9일 서당에서 첫 예배를 드리던 성도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듯 했다.

“한국 기독교 역사는 19세기 선교의 물결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그 물결이 가장 먼저 닿은 곳이 서해의 백령도가 속해 있는 대청군도지요.”(김주성 백령한사랑교회 목사)

김주성 목사와 함께 지난 2일 찾은 인천 옹진군 백령도 중화동교회(조정헌 목사)는 남한지역 최초의 자생 교회이자 백령도 내 교회들의 모태가 되는 곳이다. 높은 벼슬인 당상관(堂上官)을 지낸 허득 공(公)이 1896년 서당에서 한문과 함께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교회설립으로 이어졌다.

1800년대 백령도 주민들은 마을을 지켜주는 조상신, 땅을 다스리는 지신, 바다를 다스리는 해신 등 우상을 믿으며 정기적으로 당산제를 지냈다. 하지만 허득 공(公)이 백령도 복음화를 위해 직접 소래교회를 찾아가 서경조 장로와 전도사 김씨 부인을 모셔오고 매일 교인들을 모아 집회를 가지면서 귀신을 따르던 섬은 ‘믿음의 섬’으로 변했다.

2002년 출간된 ‘선택받은 섬 백령도’(디자인유니크)는 “백령도는 1816년 9월 영국 해군 머리 맥스웰과 바실 홀 대령의 서해안 탐험, 1832년 근대 선교의 개척자 칼 귀츨라프 선교사, 1866년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의 한국 선교 타진으로 이어지는 ‘한국교회 복음의 관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예배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로 알려진 북한 황해남도 장연군 소래교회에서 건축 재료를 배에 실어와 1899년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예배당 앞에는 1900년 11월 8일 언더우드 선교사가 중화동교회 초대 당회장으로서 성도 7명에게 세례를 준 기록이 기념비로 남아있다.

교회 왼편으론 새가 날갯짓을 하는 모양의 현대적인 건물이 눈에 띈다. 2001년 세워진 백령기독교역사관이다. 한국초기 교회사가 살아 숨쉬는 백령도의 선교 역사를 제대로 고증하고 후대에 알리기 위해 도내 교회들이 팔을 걷어붙인 것.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총회와 인천노회, 전국여전도회연합회는 물론 옹진군도 힘을 보탰다. 당시 역사관 건립위원회 총무를 맡았던 김 목사는 “각 교회별로 백령도 선교 역사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고 기도하는 과정에서 조각조각 흩어지고 묻혀있던 신앙 선조들의 헌신과 노력을 살려낼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90㎡(30여 평) 규모의 역사관에는 초기 중화동교회의 모습, 최초의 백령도 복음전파 장면, 언더우드 선교사의 세례 집례 등 1816년부터 1902년까지 86년간의 백령도 기독교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백령도는 전체 인구의 약 60%가 기독교인일 정도로 복음화율이 높다. 과거에는 기독교인 비율이 90%에 달해 일요일에는 주민 대부분이 교회에 있어 외지인들이 식당에 갈 수 없었을 정도다. 현재는 예장합동 교단 소속 10개 교회가 사역을 펼치고 있다. 그 중 3개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는 군사적 요충지인 지역 특성상 도민 1만여 명 중 절반가량이 주둔 부대 장병들이다. 당연히 군복음화와 통일 후 북한 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김 목사는 “섬 사람들은 ‘이 땅에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애국’이라는 마음으로 산다”며 “‘신앙으로 국토를 수호한다’는 마음으로 통일 후 뱃머리가 북녘을 향하는 그날까지 백령도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백령도=글·사진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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