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자식 뒷바라지 일찍 끝내려면 기사의 사진
자녀에게 언제까지 뒷바라지를 해줄 것인가. 성년이 될 때까지? 학업을 마칠 때까지? 취직? 결혼? 아니면 혹시 결혼 후에도? 1993년 미국 부모들의 생각은 “스물두 살까지”였다.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자녀가 늦어도 22세에는 독립하기를 원한다는 응답이 80%를 넘었다. 당시 에마는 한 살이었다. 잘 자라서 대학을 졸업한 2014년, 그러니까 꼭 스물두 살이 됐을 때 에마의 엄마인 랜디 호더 기자가 월간지 애틀랜틱에 딸에 관한 글을 썼다.

‘에마가 드디어 잡지사에 취직했다. 그 또래가 요즘 다 그렇듯 시간당 12달러 파트타임 일자리다. 세금을 제하면 월 1235달러(약 143만원)를 버는데 지출은 2000달러가 넘는다. 남편과 내가 매달 200달러씩 주고 있다. 건강보험료, 자동차보험료, 휴대폰 요금도 가족요금제로 우리가 내준다. 학자금 대출 이자도 그렇다. 외할머니는 졸업선물로 월 300달러씩 1년간 주기로 했다… 자녀의 경제적 독립이란 행운을 맛본 중산층 부모, 내 주변에 거의 없다. 뒷바라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 언론이 ‘요즘 애들은 왜 어른이 되지 못하나’란 주제로 이런 기사를 쓰기 시작한 건 2010년쯤부터인 듯하다. 대부분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가 청년기 경제력을 앗아갔다’거나 ‘요즘 20대는 어른이 되려면 부자 부모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부모 집에 얹혀사는 25∼29세 미국 ‘캥거루족’은 30%가 넘는다. 불황과 양극화는 미국인의 자식 뒷바라지 패턴을 바꿔놨다.

호더가 이 글을 쓸 무렵 같은 잡지에 스웨덴의 스물두 살 엘리 이야기가 실렸다. 곧 대학을 졸업하는데 학자금 대출 2만 달러를 안고 사회로 나갈 터였다. 스웨덴 대학은 무상교육이라 학비가 0원인데 왜 이런 빚을 지는가? 미국 언론이 궁금했던 건 이 대목이었다.

‘대학이 스톡홀름에 있고 부모도 스톡홀름에 사는데 엘리는 진학하며 부모 집을 나와 방을 얻었다. 정부가 지원하는 장학재단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아 방값을 내고 자취를 한다. 부모는 집에서 다니라고 했지만 엘리는 스톡홀름의 살인적 물가를 대출로 견디는 독립을 택했다. 친구들이 다 그렇게 해서 자기도 그랬다고 한다.’

스웨덴의 학자금은 학비 내라는 게 아니라 생활비 하라는 돈이다. 상환 기간이 매우 길어 졸업 후 25년 안에만 갚으면 되고, 그동안 정부가 보조금을 동원해 이자율을 아주 낮게 통제한다. 대졸 신입사원 평균 월급의 3.8%만 들이면 대출을 유지할 수 있게 맞춰져 있다. 국가가 모든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라고 주는 일종의 종자돈인 셈이다. 그래서 엘리 같은 선택이 가능하고 스웨덴 부모의 자식 뒷바라지는 어느 나라보다 일찍 끝난다.

최근 한국 부모의 상황을 보여주는 보건사회연구원 통계가 공개됐다. 25세 이상 성인 자녀를 둔 부모의 40%가 여전히 자녀를 부양하고 있었다. 그 뒷바라지에 쓰는 돈은 월평균 73만원인데 부모 소득의 평균 27%를 차지했다. 그런 도움을 받는 자녀의 59%는 직장이 있고 13%는 결혼도 한 터였다.

부모의 속내는 이런 현실과 좀 달랐다. 자식 뒷바라지를 ‘결혼할 때까지 해주겠다’는 답변은 10년 전 32%이던 게 20%로 줄어든 반면 ‘대학 졸업까지만 해주겠다’는 40%에서 49%로 높아졌다. 아마 ‘해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해주기 어려워서’일 테다. 저성장에 자녀는 자꾸 캥거루가 돼 가고, 고령화로 부모가 살아야 할 날은 계속 늘어간다. 둘 다 구조적인 문제여서 샌드위치 신세를 언제 벗어날지 알 수 없다. 아이들이 손 내밀지 않는 스웨덴 부모가 부러울 뿐인데, 스웨덴 애들이 그럴 수 있는 건 부모 세대가 구축해 놓은 복지 시스템 덕이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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