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흑산도 그 처녀 기사의 사진
“엄마, 미안해. 잘 있는 거지. 돈 많이 벌어 갈게.” 1990년대 초였다. 전남 신안군 흑산도 예리 선창가 공중전화 부스에서 서울 집으로 안부 전화를 걸었다. 섬마을 교회를 개척한 젊은 전도사 부부 취재를 위한 출장길이었다. 그때 옆 전화 부스의 젊은 여자가 울먹이며 통화를 계속했다. 소위 ‘티켓다방’ 아가씨였다. 요란한 모습과 달리 그 아가씨는 ‘엄마 미안해’를 연발하며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서울에서 거기까지 흘러들어온 듯했다. ‘엄마 미안해…’. 지금도 귓가에 남아 있다. 그날 동행한 전도사는 흑산도에 그런 아가씨가 수십명에 달한다고 했다. 그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며 예수 믿으라고 권하지만 이미 많은 빚을 져 포주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지라 접촉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흑산도는 한반도 서남부 먼바다의 중심 섬이다. 여의도 면적 5∼6배에 달한다. 조기 꽃게 고래 파시(波市) 등으로 들썩이던 1960, 70년대는 1만2000여명이 살았다. 돈이 넘쳐 선창가 마을에 100여곳의 술집이 번성했고 종사하는 아가씨도 수백명이었다. 이 환락과 음란이 뱃사람 특유의 ‘쓴 뿌리’가 됐다. 현재 주민은 4000여명이고 이 중 65세 이상이 1000여명이다. 20대 여성은 유흥업소 여성 외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곳에 5개 교회가 복음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섬 전체 크리스천은 300명 안팎이다. 출석 교인 100여명인 한 교회만이 자립교회이고 나머지는 미자립이다. 흑산도 교회는 요즘 눈물의 기도 중이다. 새벽 제단은 탄식과 회개로 무겁다. ‘음란한 영 세 사람’이 순식간에 흑산도를 ‘소돔과 고모라’의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음란한 영과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하는 한 목회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섬의 삶은 육지생활과 달라 말로 다 할 수 없다”며 “오직 성령의 바람으로 치유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복음을 전하면서 받은 수모와 박해를 애써 감추는데도 진동으로 다가왔다. 그는 ‘쓴 뿌리’라는 말로 영적 피폐를 에둘렀다.

흑산도는 실학자 정약전(1758∼1816) 유배지다. 그를 다룬 김훈의 소설 ‘흑산’에선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절해고도 흑산에 유배 온 약전이 토호세력에게 조롱당하는 대목이 나온다. 갓 잡은 고등어 다섯 마리를 세금 안 내고 빼돌렸다며 한 백성을 감금한 섬 별장(別將)에게 약전이 선처를 호소한다. 한데 별장의 대답이 이렇다. “왜 데려다 하나님을 가르치시려오?”

변방에서 일어난 한 사건을 두고 온라인 댓글이 뜨겁다. 사건이 발생한 지역 제품 불매운동까지 거론된다. 한데 생각해보라. 그것이 특정 지역 주민의 ‘악마성’ 때문인가.

최근 서울 대치동 한 최고급 아파트 단지에선 단지 주민끼리 수영장·테니스장 사용권을 놓고 치고받는다. 대전의 한 신도시 분양·임대 아파트 단지는 분양아파트 주민이 철조망을 쳐놓고 임대아파트 주민을 출입금지시켰다. 도시의 고급 아파트일수록 이웃에 대한 성을 쌓고 해자(垓字)를 파놨다. 또 교회는 신도시의 종교 부지를 얻기 위해 서로 박 터지게 싸운다. 부지 추첨에 당첨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그러는 사이 농어촌, 섬, 공단, 도시 외곽 빈민지역 공동체는 와해됐다. 사회적 약자들로만 채워진 그곳에선 완장 찬 토호들의 무법지대다. 그들에게 순치된 몇몇 주민은 흉측한 사건을 꿈에서 봤다는 듯이 헛소리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느낄 수 있었던 공동체 의식이 무너졌다. 급격한 게토(ghetto)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교회 부흥기, 신학생들은 졸업하면 섬이건 산간벽지건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였다. 그곳의 영적 리더가 됐다.

지금은, ‘데려다 하나님 가르치려’하질 않는다. 그러면서도 ‘변방의 너희 공동체는 왜 그러냐’고 탓한다. 영육 간 영속화된 가난은 마귀적 세상을 만든다.

전정희 종교국 부국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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