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이민우 구상’ 지원… 격분한 YS·DJ, 野 전면 등장 기사의 사진
1987년 7월 1일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오른쪽)와 김대중 고문(왼쪽)이 서울 중구 당사에서 통일민주당 현판을 걸고 박수를 치고 있다. 미국이 지원했던 소위 ‘이민우 구상’은 통일민주당 창당과 함께 생명력을 잃었다. 경향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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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우 구상’을 적극 지지했던 미국… 양김과 대립

이민우 구상은 정치적으로 양김(YS와 DJ)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직선제로 대통령을 뽑을 경우 결과에 자신이 없었던 전두환정권은 이민우 구상이 나오자 사막에서 물을 만난 것처럼 반겼다. 신민당 일부 세력은 직선제 개헌에 목을 매기보다는 민주화 선행조치부터 따내고 보자는 ‘선(先) 민주화론’을 지지했다.

특히 미국이 이민우 구상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사실이 국민일보가 입수한 미국 정부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미국은 대화와 타협으로 개헌이 이뤄져야 하며 개헌과 별개로 민주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는 이민우 구상과 같은 맥락이었다. 여야가 대통령 직선제에 합의할 가능성은 제로였기 때문에 대화와 타협에 의한 개헌은 곧 내각제 합의로 비쳤다. 미국은 대통령 직선제에 기운 한국 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내각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본심은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전두환정권과 신민당 일부 세력, 그리고 미국은 이민우 구상이라는 거대한 ‘3자 연합’을 구축했다.

미국의 이민우 구상 지지는 양김과의 갈등을 초래했다. 양김은 이민우 구상이 담고 있는 내각제 개헌이 전두환정권의 영구집권 음모에 동조하는 것으로 봤다.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은 두 김씨는 거대한 포위망을 정면으로 뚫고 나갔다.



‘이민우 구상’ 소생시키려고 했던 미국

87년 3월 4일 윌리엄 클라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가 방한했다. 혼자 왔다가 3월 6일 5시간만 방문했던 조지 슐츠 국무장관과 함께 한국을 떠났다. 비록 5시간이었지만 미 국무장관과 부차관보가 이례적으로 한국에 함께 있었던 것은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당시는 이민우 구상이 사망선고 직전에 있었던 시점이었다. 양김은 이 총재가 이민우 구상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신민당을 떠나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고 압박했다.

클라크 부차관보는 방한 기간 중 광폭행보를 펼쳤다. 양김과 이민우 총재, 이만섭 국민당 총재 등 야당 지도자들을 연쇄적으로 만났다. 민정당 이종찬 의원 등과 신민당 이기택 부총재, 박찬종 박관용 의원 등 여야 의원들과도 릴레이 회동을 가졌다.

클라크 부차관보의 임무는 명확했다.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87년 3월 10일 미국 국무부에 보낸 기밀해제 문서에서 “클라크의 방한은 한국에서 이민우 구상을 소생시키려는 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썼다.

DJ는 클라크와의 회동 직후 언론에 “이민우 구상에 대해 얘기가 나오더라”고 짧게 언급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클라크가 신민당 의원들에게 “이민우 구상은 누가 말했느냐보다 알맹이가 중요한 것이니까 여당과 대화하라”고 채근했던 것도 보도됐다.

릴리 대사는 “클라크 발언들은 이민우 구상에 대한 미국의 지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지지에 힘을 얻은 이민우는 자신의 구상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보고했다.



“양김, 미국의 ‘이민우 구상’ 지원 비판”

릴리 대사는 YS와 DJ의 반응도 상세히 보고했다.

릴리 대사는 “양김은 클라크와의 회동에 대해 실망했다”면서 “클라크가 (개헌으로 이뤄질) 권력구조보다는 이민우 구상의 소생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미 국무부에 전했다. 이어 “양김은 미국이 적극적으로, 그리고 잘못 알고 지원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민우 구상의 소생을 비판했다”고 주장했다.

릴리 대사는 또 “양김은 미국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는 입장 표명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현실적이다”라고 썼다. 이어 “양김은 ‘미국의 아첨꾼’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슐츠 장관 방한에 대해 불만 입장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릴리 대사는 양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민우 구상을 굽히지 않았다. 대통령 직선제 쟁취에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양김의 결단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내각제 개헌 수용은 양김에게 변절과 마찬가지였던 사실을 간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클라크 방한에 긴장했던 노태우, 회동 거부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클라크와의 면담을 거절한 것은 의외였다. 릴리 대사는 “클라크가 여당에 비판적인 말을 하거나 또는 야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에 대비해 취해지는 수비적인 자세”라고 분석했다.

노 대표는 양김을 겨냥해 “미국의 일개 하급관리(클라크)와 사진 포즈를 자랑스럽게 취한 사람들(양김)이나 이를 전면에 실어준 신문이나 모두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릴리 대사는 “노 대표의 면담 거부는 야당보다 여당 정치인들을 민족주의자로 묘사하는 데 활용됐다”고 지적했다.

릴리 대사는 회동 거부 과정도 소상히 보고했다. 그는 “노 대표가 클라크를 만나는 것을 동의했으며 노 대표 측은 약속 시간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표 측은 스웨덴 대사와의 회동이 사전에 약속됐다는 이유를 댔다가(우리로서는 믿기 힘든 이유였다) 나중에는 노 대표가 최근에 릴리 대사를 만났기 때문에 클라크를 만날 필요가 없다고 전해왔다”고 설명했다.

릴리 대사는 “민정당의 많은 사람들은 (노 대표의 행동에 대해) 앞으로 한국을 이끌지도 모르는 사람으로서 약하고 불안감을 주는 태도라고 평하고 있다”고 썼다.

릴리 대사는 “민정당에서는 클라크의 방한에서 여당을 당황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은 데 대한 안도함이 있었고 일부 사람들은 이민우 구상을 되살리려는 미국의 노력을 이해하고 기쁨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미국, ‘민주적인 개혁’으로 용어 변경

릴리 대사는 “이민우 구상이 재부상했다”고 만족감을 표현했다. 또 “이민우 구상이 협상과 평화적 해결의 씨앗을 가진 ‘혁신적인’ 제안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다”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릴리 대사는 “미국은 이미 이민우 구상 뒤에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에 우리가 계속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야당과 집권당 간의 내부 정치에 간섭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그래서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런 곤경에 빠져들지 않고 이민우 구상으로 표현되는 개념들을 계속적으로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개혁’과 같은 폭넓은 개념으로 이동할 것을 제안한다”면서 “우리(의 의도)는 이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이 그토록 응원했던 이민우 구상은 양김이 87년 5월 1일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며 생명력을 완전히 잃었다. 이민우 구상의 당사자인 이 총재도 정치무대에서 쓸쓸히 사라졌다. 미국의 이민우 구상 지원은 한국 국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열망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면서 발생한 정책적 실수라는 비판이 설득력 있다. 이민우 구상이 미국 또는 전두환정권과 사전협의 없이 이 총재 단독플레이로 만들어진 아이디어였는지 여부는 여전히 미궁으로 남아 있다.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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