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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책-‘천로역정’] “성경 다음으로 자주 읽은 내 영성의 자양분”

이동원 목사가 고른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

[길 위의 책-‘천로역정’] “성경 다음으로 자주 읽은 내 영성의 자양분” 기사의 사진
▲영국 버니언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전도자와 크리스천. 두란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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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기독교 출판계에 지난주 한줄기 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가 지난 9일 ‘길 위의 책’으로 소개한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의 ‘예언자들’에 뜨거운 관심이 쏟아진 것이다. 책을 펴낸 도서출판 삼인의 홍승권 대표는 기사가 나간 이튿날 페이스북에 “오늘 난데없이 ‘예언자들’이 70부 넘게 주문이 들어와 웬일인가 했는데, 청파교회 김 목사님께서 국민일보를 통해 언급하셔서 그런가보다”고 적었다. 그 뒤로도 주문이 이어져 일주일 만에 120부가 나갔다고 한다. 이 책이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교보문고 종교분야 베스트셀러 20위권에 오르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1987년 종로서적에서 첫 선을 보인 뒤 사라졌던 이 책은 2004년 삼인에서 재출간됐다. 12년 전 출간된 782쪽의 두꺼운 책이 이런 반응을 얻는다는 건 이례적이다.

28년 전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을 꺼내며 반가워하는 이들부터, ‘김 목사님이 추천하신 책이라 더 궁금하다’거나 ‘지금도 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이냐’는 등 독자들의 반응도 여러 가지였다. 한 신대원생은 “지면에 ‘예언자들’ 책에 대한 소개가 적어서 아쉬웠다”며 “‘길 위의 책’ 자체에 대해 지면을 좀 더 할애해 소개해주면 좋겠다”고 전해왔다. 이런 다양한 여론을 수용해 이번 주 ‘길 위의 책’엔 한층 풍성한 책 이야기를 담았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지구촌미니스트리네트워크(GMN) 이동원(사진) 원로목사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두 개의 액자가 눈에 들어온다. 두 개 모두 초상화가 들어있는데 왼쪽은 17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청교도 설교자인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이고, 오른쪽은 19세기 ‘설교의 황태자’로 불렸던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1834∼1892) 목사다. 같은 영국인이지만 두 사람의 시대적 간극은 200년이다. 이 목사는 왜 두 명의 초상화를 책상 뒤 벽에 걸어놓았을까. 공통분모는 한 권의 책이었다. ‘천로역정’. 버니언이 지은 이 책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목회자가 스펄전 목사였다.

이동원 목사에게 천로역정은 각별하다. 신앙 입문 초반에 선교사에게서 우연히 영어판 천로역정을 선물 받았는데, 영한사전을 닳도록 찾아보며 읽었다고 한다. 그는 “(천로역정은) 내 신앙의 자양분이 됐다. 읽을 때마다 회복해야 할 영성의 보석이라는 생각이 든다.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고 했다.

이 목사가 천로역정을 읽은 횟수는 100번이 넘는다. 그는 “설교 단상에 처음 오르는 새내기 목회자에게 천로역정을 반드시 권한다”며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우리 인생을 그대로 비춰준다”고 말했다.

1678년 초판이 나온 천로역정은 꿈의 형식을 빌어 스토리를 풀어낸다. ‘크리스천’이라는 남자가 ‘멸망의 도시’를 떠나 ‘시온성’을 향해 가는 과정을 담았다. 이 목사는 “천로역정이 강조하는 주제는 구원의 영성이다. 이 구원은 칭의를 넘어 성화를 다룬다”고 말했다.

“멸망의 도시에서 십자가까지의 거리는 전체 분량 중 5분의 1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구원 이후를 다룹니다. 크리스천이 인생 여정에서 수많은 욕망과 싸우고, 사탄의 도전 앞에서 거룩함을 이뤄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어요. 숱한 고난을 통해 성화를 이루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다시 필요한 영성이라 할 수 있어요.”

기독교 신학에서 구원의 영역은 ‘칭의’ ‘성화’ ‘영화’ 등 3요소로 구성된다. 이 목사는 “구원만 받고 책임 없이 살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끝까지 신앙생활을 완주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며 “천로역정은 그 완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가 다른 어떤 책보다 천로역정을 먼저 추천하는 이유는 개신교 영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순례기로 단테의 ‘신곡’도 있지만 이 책은 ‘지옥-연옥-천국’이라는 구조 속에서 로마가톨릭의 영성을 말하고 있기에 개신교인들에겐 천로역정이 제격이다.

천로역정은 한국교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장로교 선교사 제임스 게일(James Gale, 1863∼1937)이 1895년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가 한글로 번역한 ‘텬로력뎡’을 길선주(1869∼1935) 목사가 읽고 감명을 받아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끌었다.

이 목사는 “성결교의 이성봉(1900∼1965) 목사도 전국을 다니며 천로역정 부흥회를 열었다”며 “그가 ‘멸망의 도시’를 장차 망할 성이란 뜻으로 ‘장망성’이라 표현한 것은 당시로선 탁월한 번역”이라고 말했다.

이동원 목사는 최근 1년 내내 천로역정으로 설교를 했다고 한다. 오는 9월에는 경기도 가평군 필그림하우스 내에 ‘천로역정 순례공원’도 완성된다고 했다. 이 목사의 천로역정 사랑은 존 버니언의 전기(‘존 번연의 순례자 영성’)가 최근 출간되는 데도 영향을 주었다. 순례공원 개원식에는 전기의 저자인 피터 모든 영국 스펄전대 교수도 내한할 예정이다.

1895년 첫 천로역정 출간 후 국내엔 수많은 천로역정이 선을 보였다. 15일 한 인터넷서점에 ‘천로역정’을 검색하자 137건이 검색됐다. 고전(古典) 때문에 고전(苦戰)하는 독자들은 어떤 책을 잡아야 할까. 이 목사의 대답은 이랬다. “만화로 읽어도 좋아요. 대략적인 줄거리를 파악한 다음 원본을 침착하게 읽어보자구요.”

성남=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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