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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예수-승효상] “집 짓다가 세상 다시 짓기 나선 분이 예수”

한국 대표 건축가 승효상

[나와 예수-승효상] “집 짓다가 세상 다시 짓기 나선 분이 예수” 기사의 사진
서울 대학로의 건축사무소 ‘이로재’에서 만난 건축가 승효상. 그는 “어릴 때는 어머니 손에, 커서는 집사람 손에, 늙어서는 딸 손에 이끌려서 교회에 가고 있다. 내가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이들 세 여자의 힘이 컸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보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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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가 오늘부터 평신도 오피니언 리더의 삶과 신앙을 다루는 ‘나와 예수’를 새롭게 연재합니다. 이들 오피니언 리더의 신앙고백을 통해 독자들도 ‘나와 예수’ 사이에 놓인 거리를 가늠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직업이 뭐였죠?”

건축가 승효상(64)은 인터뷰 도중 대뜸 이렇게 물었다. “목수 아니었느냐”고 얼버무리자 독특한 해석을 내놓았다. 예수님도 건축가였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당시 이스라엘에 있던 나무는 거의 다 감람나무였어요. 그런데 이 나무는 건축 자재로 사용하기 힘듭니다. 실제로 당시 집을 지을 땐 석회암을 썼어요. 목수가 필요 없던 시대였죠.”

그러면서 그는 성경의 오역(誤譯)을 지적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다. 승효상의 건축 철학에 새겨진 기독교의 무늬를 확인케 하는 설명이기도 했다.

“요셉을 따라 예수님도 가업을 물려받았을 겁니다. 영어성경에서 요셉의 직업은 ‘카펜터(Carpenter·목수)’로 돼 있어요. 그런데 헬라어 성경은 다릅니다. ‘텍톤(Tecton)’으로 표기돼 있죠. ‘텍톤’은 건축가 ‘아키텍트(Architect)’의 어원입니다. 목수가 아니에요. 건축가였을 수도 있다는 거죠. 집을 짓다가 어느 순간 세상을 다시 짓자고 결심한 인물, 그가 바로 예수님 아니었을까요?”

‘빈자의 미학’에 깃든 기독교 신앙

최근 승효상을 만난 곳은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 대학로의 건축사무소 ‘이로재(履露齋)’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구석에 놓인 죽도(竹刀)에 눈길이 갔다. 검도 3단의 실력을 가진 그는 소문난 검도 애호가다. 승효상은 “검도를 할 때 ‘페인트 모션’을 하면 얻어맞는다. 상대를 속이면 안 되는 운동이다. 내 성격에 딱 맞는다”며 웃었다. 좋아하는 사자성어 역시 단도직입(單刀直入)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화법은 검도의 검법과 비슷했다. 시종일관 진중한 태도로 말하면서도 그 속에는 날카롭게 벼른 신앙관이 담겨 있었고, 한국교회를 비판할 때는 거침이 없었다. 승효상은 “우리나라 교회가 과연 교회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승효상은 자신을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확실한 신자”라고 소개했다. 평북 정주가 고향인 그의 부친은 해방 직후 부산으로 내려와 지인들과 교회(구덕교회)까지 세울 정도로 신실한 신앙인이었다. 어린시절 그에게 교회는 놀이터였고,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신학과 진학을 염두에 두기도 했다.

“종교 속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자랐어요. 자연스럽게 신학에 관심을 가졌죠. 종교를 갖는다는 건 본질에 대한 질문을 품는다는 의미입니다. 좋은 질문을 품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어요.”

승효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꼽힌다. 현대건축 1세대를 이끈 김수근(1931∼1986) 아래에서 건축을 배웠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자택인 ‘수졸당’,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역 등을 설계했으며 한국건축문화대상과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그의 건축세계를 관통하는 용어는 ‘빈자(貧者)의 미학’이다. 승효상이 1992년 한 건축전시회에서 주창한 이 개념은 ‘가난한 이가 아니라 가난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건축 방법론’이다.

‘빈자의 미학’에는 집을 지을 땐 ‘비움’을 통해 공동체를 위한 소통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담겨 있다. 그는 동명의 저서 ‘빈자의 미학’(1996)에서 이렇게 적었다.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고,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 중요하다.’

“어린 시절 교회에서 봤던 서로 돕고 사는 이웃들 모습, 달달 외운 성경구절들…. 이런 것이 잠복해 있다가 터져 나온 게 ‘빈자의 미학’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도 있지요. 교회는 세상의 어떤 공동체보다 경건해야 합니다. 속되지 않아야 해요.”

“건축은 성직(聖職)”

건축은 확고한 논리와 빈틈없는 계산의 세계다. 승효상은 줄곧 이 세계에서 밥벌이를 했고 명성을 쌓았다. 과학적인 판단보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지해 세상을 바라보는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데 갈등은 없었을까. 그는 이 질문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교만한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해하기 위해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중세 철학자 안셀무스(1033∼1109)의 주장이 연상되는 발언이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적혀 있습니다. 말씀은 태초부터 존재한 진리인 겁니다. 인간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까지 스스로 연마해야 합니다. 그게 신앙입니다."

승효상은 '글 잘 쓰는 건축가'로도 유명하다. 저작들에서는 건축가를 창조주나 성직자에 빗대 설명한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건축가 '아키텍트(Architect)'에 정관사 '더(The)'를 붙인 단어가 조물주 하나님을 가리키는 점을 자주 거론하면서 건축이 얼마나 성스러운 작업인지 설명하곤 한다.

"건물을 설계할 때 선 하나를 그으려면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함부로 선을 그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의 존엄과 생명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굉장히 종교적인 일인 거죠. 건축가는 성직자보다 더 성스러운 직업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인터뷰에서는 교회 건축과 관련된 그의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경건해야 하고 장소와 시대에 어울리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가 꼽는 최고의 교회는 민현식(70)이 설계한 서울 동숭교회(서정오 목사)였다. 승효상은 이 교회 장로이자 성가대원이기도 하다.

"동숭교회는 교회 마당이 세상에 열려 있어서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당이 범상치 않아요. 번잡한 대학로 길가에 있지만 낮은 단(壇)이 있어서 함부로 범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인상을 줍니다. 외부의 공간을 수용하면서 교회의 '목적성'까지 보듬은 공간인 거죠."

가장 유명한 건축가이지만 그가 설계한 교회는 6∼7곳밖에 안 된다. 김수근 문하에서 서울 경동교회(채수일 목사), 독립해서는 경기도 부천 성만교회(이찬용 목사)를 설계했다.

설계를 의뢰했어도 거절한 교회가 적지 않았을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교회를 개인 사업장으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의 '사업'을 도와줄 순 없는 일"이라고 했다.

"예수님은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고 보수적인 관습과 구태를 배척했습니다. 특정 정파나 이념에도 휘말리지 않았어요. 광야에서, 외곽에서 경계 안에 있는 사람을 비판하고 세상의 잘못을 지적한 분이었지요. 기독교가 세상 그 어느 종교보다 근사한 것은 이런 예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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