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마을이 학교다 기사의 사진
1980년대 우리 사회엔 인정과 교류가 있는 ‘골목문화’가 있었다. 삶이 힘겨워도 골목안 사람들에겐 서로를 아끼는 훈훈한 정이 있었다. 골목길은 통행을 위한 길이 아닌, 집의 연장이자 공동체문화가 만들어지는 장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이웃과의 교류도 줄고 있다. 인생을 배울 수 있는 마을학교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매년 6만∼7만명의 청소년들이 학교 밖으로 나온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2016년 현재 학교 밖 청소년을 39만여명으로 추산한다. 아이들은 학교 부적응, 가정문제, 비행, 질병 등의 사유로 학업을 중단한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학교 밖 청소년 4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6.9%가 학교를 그만둔 것을 후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53.5%가 학교를 그만둔 후 집을 나와 생활하는 것으로 드러나 구체적인 도움이 절실하다.

재기할 방법을 몰라서 방황하는 아이들은 끌어주면 반드시 변한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것이 우선이다. 마을이 답이다. 이는 사역 현장에서 증명되고 있다. 24년 동안 서울 거여·마천동에서 학교 밖 청소년 사역을 하고 있는 최연수(한빛청소년대안센터 센터장) 목사는 학교 밖 청소년들이 꿈을 설계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마을)를 기반으로 한 지원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는 처음에 지역 내 가게 사장님 한 분, 한 분을 찾아가 “우리 지역 아이들이니 함께 키우자”고 설득했다. 당구장 사장님이 당구교실을 지도해주고, 동네 카페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해주며 지역에서 아이를 같이 키웠다. 이를 통해 꿈을 찾은 아이들은 경찰공무원, 대기업 사원, 자동차정비공, 공연기획사 대표, 뮤지컬배우, 백댄서, 요리사, 사회체육가, 헬스트레이너, 사업가 등 다양한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에 보다 다양한 진로와 삶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지역 주민에게는 또 다른 자아실현의 기회와 유대감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마을학교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건강해야 내 아이도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 얼마 전 소년원에서 보호관찰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어머니 자원봉사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한 달에 5∼10명의 비행청소년을 상담한다고 했다. 처음에 청소년들이 폭력, 절도, 강간미수, 약물중독 등이란 무거운 죄명을 갖고 있어 걱정했는데 막상 순진한 얼굴의 청소년들을 본 순간 자신의 자식과 다르지 않았다고 했다. ‘내 아이들을 잘 키우려면 남의 아이들도 잘 돌봐야 한다’는 마음으로 상담봉사를 시작했다는 그녀로부터 상담 받은 아이들의 재범률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과 사랑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는 아프리카 속담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미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이 연설에 인용해서 유명해진 말이다. ‘한 마을에 불행한 사람이 있으면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아이 하나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희생을 감내하라는 뜻보다는 공동체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네트워크가 촘촘한 사회는 한 사람이 큰 상처를 받아도 그 상처를 보듬어서 상처가 아물 때까지 품어 줄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마을 속에서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무엇보다 부모들은 청소년 자녀들에게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 주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다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란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계획이다. 인생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도를 가진 사람은 살아가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이지현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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