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월항쟁 벼랑끝 전두환 정권 “시거, DJ 회동 땐 연행” 기사의 사진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전국에서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다. 6월 10일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대학생들이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호헌철폐와 독재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민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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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정점으로 치닫자 미국은 커튼 뒤에서 나와 무대 위로 올라왔다. 미국 국무부가 87년 6월 22일 “현재의 한국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군부가 개입하지 마라”며 공개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날린 것이 대표적 예다.

다음 날인 6월 23일 개스틴 시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한국을 찾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서 “시거 차관보는 무엇이든 필요한 일을 다할 것”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시거 차관보는 2박3일의 짧은 방한 기간을 바쁘게 보냈다.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만났고, 김수환 추기경,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도 대화를 나눴다. 시거 차관보는 “한국 상황을 정확히 알고 싶다”면서 전두환정권의 눈엣가시였던 김대중(DJ) 민추협 공동의장과의 회동을 추진했다.

시거 차관보가 가택연금 상태에 있던 DJ를 만나려고 하자 전두환정권의 불만은 폭발했다. 또 미국 당국자와 DJ 간 회동이 미국의 민주화 운동 지지로 비칠까 봐 겁을 냈다. 전두환정권은 회동을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들은 “시거 차관보가 DJ를 만나기 위해 동교동 자택에 가려고 시도할 경우 경찰에 강제 연행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미국은 “시거 차관보가 제지당한다면 한·미 관계에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격앙했다.

국민일보는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87년 6월 24일 미 국무부에 보고했던 ‘시거 차관보와 KDJ(김대중) 회동: 현재 상황’이라는 기밀해제 문서를 입수했다. 이 문서는 6월 민주항쟁으로 벼랑에 몰렸던 전두환정권의 필사적인 몸부림이 서술된 역사적 기록이다. 시거 차관보와 DJ의 회동을 둘러싼 한·미 간 줄다리기의 비화는 미국의 민주화 운동 지지를 두려워했던 전두환정권의 단면이다. 벼랑에 몰린 전두환정권은 그들의 보루였던 미국을 향해서도 호전적인 자세를 취했다.

盧, “美 언론이 한국 상황 과장” 불만

시거는 6월 24일 오전 민정당사에서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만났다. 노 대표가 시거에게 던진 말에는 당시 전두환정권이 가졌던 미국에 대한 불만이 응축돼 있다.

노 대표는 “국내에서나 해외에서 미국 TV를 보는 사람은 시민들의 반란에 나라가 뒤흔들리고 한국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갖는다”며 미국 언론의 보도를 비판했다. 이어 “미국에서 공부하는 딸(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예전에는 한 달에 한 번쯤 집에 전화했으나 최근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집에 전화한다”면서 “한국 상황이 심각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 언론의 보도에는 과장이 있다”고 지적했다.

6월 민주항쟁을 겪으면서 미국에 대한 전두환정권의 기대는 불만으로 변했다. 미 국무부가 군부 개입 반대 논평을 내자 그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당시 한국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약화되고 있는데, 유독 한국 정치에만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최광수 외무, “잘못된 타이밍에 회동”

시거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움직였던 6월 24일에는 엄청난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날 오전 김영삼(YS) 민주당 총재를 만나 4·13호헌조치의 철회를 시사했다. 또 DJ의 가택연금을 이날 자정 해제했으며 사면복권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광수 외무장관은 같은 날 정오에 릴리 대사를 급히 불렀다. 문서를 보면, 시거는 이날 오후 5시 전두환 대통령과 면담이 잡혀 있었다. 미국은 이에 앞선 오후 3시 시거와 DJ 회동을 추진했다. 한국 측이 시거가 대통령 회동 전에 DJ를 만나는 것에 강력히 항의하자 미국 측은 DJ와의 회동을 오후 6시30분으로 늦췄다.

최 장관은 릴리 대사를 만나자마자 “시거가 DJ를 만나기를 희망한다는 보고를 받고 깜짝 놀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자기가 하는 말은 전 대통령의 강력한 요구라면서 “시거가 DJ와의 회동을 강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최 장관은 이어 “한국 정부는 DJ에게 관대한 조치를 취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서 “시거가 전 대통령과 (DJ를 제외한) 여야 지도자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현 상황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또 “한국 정부는 미국 고위 관료가 DJ를 만나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지금은 잘못된 타이밍”이라며 “작은 실수가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만류했다.

릴리, “비판론자들이 시거 찢어놓을 것”

릴리 대사는 미국 상황을 핑계로 댔다. 그는 “미국 내에서 우리의 정책이 약하고 전두환정권에 너무 동조적이라는 이유로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동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시거의 신뢰성은 도전받을 것이며 미국 내 비판론자들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한 새로운 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미국은 한국 정부의 뜻에 따라 DJ와의 만남을 연기해 왔다”면서 “지금은 상황은 달라졌다”고 압박했다.

릴리 대사는 “시거가 DJ를 만나 어떠한 형태의 정치적 폭력도 미국은 반대한다는 뜻을 전할 것”이라며 “DJ에게 이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은 한국 정부에도 유익한 일”이라고 다독였다.

최 장관은 “전 대통령과 시거의 회동을 권했다는 이유로 나도 한국 정부 내 강경파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면서 “전 대통령이 앞으로 내놓을 유화적인 조치가 미국의 압력 때문이라는 주장이 전 대통령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또 “DJ는 (당시) 야당 총재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 국민에게 시거와의 회동을 이해시키기에 어려움이 따른다”면서 “이 회동이 성사되면 전 대통령이 미국 정부로부터 압력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줄 것”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릴리 대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시거는 DJ를 만남으로써 미국 내 비판세력에 답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면서 “회동이 성사되지 않는다면 비판론자들은 이 이슈를 가지고 시거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한국 정부, “시거의 보좌관은 가능” 타협안

최 장관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는 “많은 한국 국민은 회동을 미국의 내정간섭으로 보고 깊게 분노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이런 이유들로 시거가 DJ 자택에 가려고 시도할 경우 십중팔구 경찰에 의해 강제 연행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최 장관은 타협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DJ를 만나고 싶다면 시거를 대신해 데밍(시거의 특별보좌관)이 DJ를 만나는 것은 가능하다”면서 “이는 시거가 김대중을 만나서 발생할 수 있는 상징적인 피해를 피하면서 우리가 김대중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릴리 대사는 격분했다. 그는 “만약 시거가 경찰에 의해 제지당한다면 우리 관계에 미칠 피해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시거는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임무를 받고 왔기 때문에 DJ와의 만남에 물러설 수 없으며 만약 만나지 못한다면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모욕으로 여길 것”이라고 강경하게 나왔다.

릴리 대사는 “DJ가 시거와의 회동 결과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왜곡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동 직후 공개적으로 회동 내용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를 설득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필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DJ와의 회동을 강행했다. 시거는 회동 시간을 여러 차례 옮기다가 24일 오후 9시 DJ를 만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을 장악했던 전두환정권은 시거와 DJ 회동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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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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