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최석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기부 기사의 사진
그림 그린답시고 살아오면서 주변의 도움을 많이도 받았던 것 같다. 세상에 자기 혼자 힘으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젊은 시절에는 어리석어서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고 신세를 진 사람들의 은덕도 모르는 채 지나간 경우가 많았다. 알면서도 때를 놓쳐 늘 마음속으로만 고마워할 뿐 쑥스러워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내가 어렵고 힘든 시절 남의 덕을 많이 봐온 터라 예전의 나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에 빠져 있는 이들을 보면 내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작은 눈을 일부러라도 크게 뜨고 유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언젠가 인도의 빈민가 어린이들로 구성된 ‘바나나 합창단’의 공연을 가족과 함께 보러간 적이 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에 딸의 이름으로 매달 조금씩 후원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벌써 10년이 되었다. ‘후원 실명제 위반’이 된 셈인데 딸에게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떤 월간 잡지에 1년 넘게 그림 이미지를 게재하면서 받은 원고료의 절반을 그 잡지사에서 진행하는 연말 불우이웃 돕기에 보낸 적도 있다.

가까운 사람들과 자주 만나며 만남의 의미를 더하려 매달 적립한 소액의 회비와 회원들이 기증한 그림을 경매해서 만든 기금을 합해 라오스의 농촌도시 방비엥의 초등학교에 새 교실을 지어주었다. 최근에는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동쪽 지역 고르카의 한 초등학교를 재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물론 내가 내는 후원금은 모임 전체의 ‘n분의 1’일 뿐이다.

3년 전 나는 어느 국제구호단체의 주선으로 그 단체가 시행하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동쪽 아프리카의 케냐, 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를 방문해 기아와 기근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작렬하는 햇볕 속에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케냐의 코어라는 곳에서는 전갈에 물려 죽어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탄자니아에서는 부모로부터 에이즈가 감염돼 태어나면서부터 에이즈 환자가 되어 살아가는 어린 여자아이도 보았다.

미술 교육으로 불우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자는 취지의 사업을 하러 간 곳에서 내가 인간 교육을 다시 받는 느낌이었다. 희망도 보았다. 평생 처음 만져보는 화구를 들고 뚫어져라 옆 친구를 관찰하며 얼굴을 그리던 아이에게서 미래의 장 미셀 바스키야를 보았다. 그림을 잘 그렸다는 칭찬을 받은 한 남자아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앞으로 어떤 일이라도 할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았다. 열세 살인 그 아이는 태어나서 칭찬을 처음 들었다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돌아온 뒤 나는 세 나라에 한 명씩 세 명의 아이들에게 소액의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다 모아봐야 저녁 한 끼 값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거기서는 한 아이가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최소한의 영양제를 먹으며 한 달을 꾸려나갈 수 있다. 내가 의식하지도 않는 동안 매달 빠져나가고 있는 이 후원금으로 작고 눈에 띄게 병약했던 아이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른다.

탄자니아의 소시테네시도 키가 많이 자랐고 케냐의 다발렌은 지난번 시험에서 2등을 했다고 자랑했다. 음식 행상을 하는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마다가스카르의 신시아는 앞니가 빠진 말괄량이였다가 키가 훌쩍 커지고 예쁜 소녀로 성장했다.

매년 연말이면 아이들로부터 안부 편지가 날아온다. ‘후원자님 덕에 잘 지낸다’는 내용이다. 아이들은 언제나 내게 행복과 건강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그럴 때마다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이 가슴에 밀려온다. 내가 뭘 했다고.

최석운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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