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싫은 상대와 대화하는 능력 기사의 사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적극 병행 추진해야 한다.”(왕이 중국 외교부장)

“북한이 비핵화에 응하면 평화협정과 불가침조약을 논의할 수 있다.”(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홍용표 한국 통일부 장관)

4차 핵실험 이후 지속되는 대북제재 국면에서 중국과 미국이 신축성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하는 등 제재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지만 그 목표는 북한 붕괴가 아닌 것 같다. 한국 정부는 “미국 인사들이 북·미 평화협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말하지만, 그런 움직임에 관한 미국발 보도는 나오고 있다.

중국 태도는 더 신축적이다. 다음 달에 중국의 대북정책은 중요한 분기점을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7월 11일이 북·중 우호동맹 체결 55주년이고, 7월 27일이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정전협정 체결일이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북한과 중국 간에 고위급 채널이 가동되지 않겠느냐고 보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북·중 관계에 변화가 나타날 움직임은 여러 갈래로 감지된다.

한국은 대북 채널을 전면 폐쇄했다. 비핵화 선결을 주장하는 외의 어떤 대북 카드도 쓰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으면 어떤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미국이나 중국이 적극적으로 지지할 때만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카드다. 지금은 중국과 미국의 계산이 매우 중층적이다. 그래서 한국이 미·중의 움직임에 끌려가거나 소외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북핵 문제는 주변 강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난제 중의 난제다. 6자회담과 남북대화와 미·북대화와 유엔이 모두 함께 풀어야 하는 다채널 외교게임이다. 한 가지 전략이나, 한 명의 친구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압박을 받는다고 스스로 핵을 폐기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중국이 있는 한 쉽게 붕괴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때 유행어가 됐던 ‘통일대박’은 그동안의 경위로 볼 때 북한이 붕괴해 호박이 우리에게로 굴러오는 비현실적인 대박론에 가까워 보인다. 한반도 미래를 어떻게 견인하겠다는 철학보다는 단순한 소망과 경제적 환상이 결합한 구호에 가깝다.

개성공단은 폐쇄됐고, 남북 사이의 창구는 모두 닫혔다. 역대 정권에서 놓았던 징검다리가 전부 없어졌다. 북한은 신뢰할 만한 상대는 절대로 아니다. 지구상 먹이사슬의 최말단에서 살아남으려고 핵을 갖고 장난을 치는 세습 독재의 나라, 부자간에도 흉금을 터놓을 수 없는 나라가 북한이다. 한국은 국가권력의 정당성과 합법성은 물론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력과 인적 자질을 확보한 나라다. 남북대화를 차단해 국제적으로 궁색하게 보일 이유도 없고, 우리의 문제로 주변국에 끌려다닐 필요도 없다. 대화 외면 카드로는 변화하는 국제관계 속에서 북한 해법의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대북압박으로 핵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려는 정책이 더 이상 효력을 거두지 못할 때의 대비책은 무엇인가. 대북문제에 주도권이 없는 상태에서 혹여 북한이 붕괴한다면 한국이 먹을 떡은 얼마나 될 것인가.

대화하지 못할 상대란 없다.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폐쇄된 사고가 있을 뿐이다. 조선시대의 경연(經筵)은 왕과 신하들이 함께 공부하는 제도였다. 왕과 신하는 매일 경전을 읽고 토론하며 어려운 시대를 이겨내는 힘을 길렀다. 경연을 통해 임금은 충돌하는 사상의 혼재를 배우고 이해했다. 싫은 것을 보고 참을 줄 아는 도량을 키웠고, 대화를 통해 그것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었다. 오늘의 한국에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는가.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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