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내가 웃겼잖아… 그 웃음, 하나님이 주신거야”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내가 웃겼잖아… 그 웃음, 하나님이 주신거야” 기사의 사진
원로 코미디언 구봉서 장로.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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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세월은 희극계의 전설을 병마에 시달리게 했다. 하지만 그의 구수하고 재치 있는 입담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가 말을 꺼낼 때마다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원로 코미디언 ‘막둥이’ 구봉서(90) 서울예능교회 원로장로. 1945년 악극단 생활을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구 장로는 곽규석 배삼룡 서영춘 김희갑 등과 함께 한국 코미디를 이끄는 거목으로 불렸다. 1965년 ‘애정파도’로 영화배우로도 데뷔해 약 400편의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믿음직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그를 23일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만났다. 휠체어를 탄 상태에서 진행된 인터뷰인데도 그와의 대화는 무겁지 않았다. 응접실에서 기다리는데 안방에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 국민일보에서 당신 인터뷰하러 왔어.”

“가만 있어봐. 머리 좀 빗고. 사진 멋있게 나와야 하잖아.”

잠시 뒤 백발에 단정한 복장을 한 구 장로가 나타났다. 한눈에 봐도 영락없는 무대 체질이었다. 구 장로 곁에는 58년간 해로한 부인 정계순(78·서울예능교회) 권사가 함께했다. 정 권사가 먼저 “몸이 안 좋으셔요. 엊그제도 숨이 차 하마터면 돌아가실 뻔했어요. 인터뷰가 가능할지 모르겠어요”라고 운을 뗐다.



-구 장로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반갑게 악수를 했다.) 보다시피 휠체어 타고 있잖아. 8년 전 넘어져 뇌수술을 했어. 콩팥도 안 좋아.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하러 병원에 다니고, 먹는 것을 가려 먹어야 해. 요샌 귀도 잘 안 들리네(자세히 보니 구 장로는 양쪽 귀에 보청기를 끼고 있었다). 4개월 전에 넘어져 다리에 깁스를 했는데 며칠 전 풀었어. 아직 힘이 없어 걷질 못해. 정신만 멀쩡하지 딴 덴 다 바보야(그가 어이없다는 듯 ‘허허’ 너털웃음을 지었다).”

옆에서 듣던 정 권사가 말을 거들었다. 정 권사는 신문·잡지 인터뷰나 TV 출연 요청을 거절하면 자신을 나무란다고 했다. 구 장로가 몸이 아프니 방송 출연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2월 TV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희극배우로서 근성이 남아 있는 듯했다.

-집안에만 계시기 힘드실 텐데, 외출은 좀 하세요?

“(그는 기억이 흐린 듯 눈을 깜박였다. 느리지만 차근차근 말을 이어갔다.) 기력이 없어 잘 못 나가. 대신 후배들이 놀러와. 엄용수가 젊은 후배들을 데리고 자주 와. 올 때마다 큰절을 해. 와서 재롱을 많이 떨어주니 좋고. 남보원이도 며칠 전에 왔다 갔고. 송해는 술 먹고 가끔 전화해. ‘형님, 오래 살아야 합니다’라고 하면서. 서로 늙어가는 처지인데 고맙게…(웃음).”

구 장로는 물끄러미 밖을 내다 봤다. 창문 너머에 푸른 산과 숲, 꽃이 피어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나는 여기 이사 오고 나서 자꾸만 저기 저 산에 쓸데없는 ××들이 쳐들어오는 꿈을 꾸어. 6·25때 생각이 나면 기분이 안 좋아”라고 말했다.

“나는 6·25 참전용사야. 해병대 출신이고. 고향 평양까지 갔다가 후퇴했어. 북한군 중공군이 산 넘고 물 건너 떼로 몰려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해.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전쟁의 참상이 잊혀지지 않아. 총과 포탄에 맞아 고통 받은 사람들, 피란길에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지는 고통 말이야.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했으면 해. 이 나라의 안정과 평화통일을 위해서 말이야.”

구 장로는 여러 번 군(軍)에 입대했다. 특이한 이력이다. 그는 1949년, 50년, 54년 세 번 입대했다. 두 번은 육군 예술부대에, 한번은 해병대 예술부대에서 복무했다. 60년대 중반 월남파병 위문공연에도 참여했다. 그의 국가유공자 자격은 이런 전력을 위로한 것이다.

-구 장로님을 뵈니 ‘웃으면 복이 와요’ 생각이 납니다. 그때 정말 최고의 코미디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요.

“며칠 못 갈 것이라는 악평에도 불구하고 69년부터 16년간 국민을 웃겼어. 방송 비중이 컸지. 나는 작가 역할까지 겸했어.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기억 나? 이것도 내가 쓴 거야.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 무드셀라까지 넣었어.”

갑자기 구 장로가 기자의 나이를 물었다. 그리고 흥겹게 말했다. “웃으면 복이 와요 보면서 자랐겠구먼.”

-몸이 불편하신데 교회에 나갈 수 있으세요?(구 장로는 서울 종로구 예능교회 창립 멤버다)

“평소에 기독교TV를 즐겨봐. TV로 새벽기도를 드리고. 내 생활 중에 교회 가는 것이 제일 즐거워. 교회에 가면 좋지. 전부들 좋아하고 이것저것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보고. 구봉서의 ‘기쁨조’들이 있어. 재롱떠는 교인들 말이야. 교회 프로그램도 있고. 건강 때문에 집에선 잘 못 먹는 맛있는 케이크와 과일, 커피도 주고. 한데 말이야. 내 아내가 좀처럼 교회에 안 데리고 가…(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정 권사는 남편의 말에 멈칫했다(구 장로를 힐끗 쳐다보더니).

“매주 교회에 못 나가요. 차로 1시간 정도 걸리거든요. 지난주엔 자식들이 도와주어 겨우 교회에 갈 수 있었어요. 남편은 교회에 나가지 못한다고 하면 웁니다. 교인들이 보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모시고 가는 게 힘들지만 교회에 나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 권사는 남편이 식사 때 밥을 잘 안 먹어 걱정이라고 했다. 햄버거, 토스트, 스프 등 양식을 좋아해 한번은 “당신 밥 안 드시면 교회 안 모시고 가요”라고 말했더니, 그제야 억지로 밥을 잡숫더란다.

-교회에 어떻게 다니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70년대 중반,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게 됐지. 아내가 먼저 믿었어. 믿으니 마음이 평안해. 믿음이 생기니 마리아가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한 것을 이렇게 고백하고 전도했지. ‘제 서방(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믿는데 왜 너희들이 못 믿어’라고 말이야(하하). 이후 연예인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연예인교회(현 예능교회) 설립을 도왔지. 동료 기독연예인과 연예계 복음화에 힘썼지. 가족들까지 전도했어.”

-구 장로님이 생각하시는 코미디란 무엇인가요?

“코미디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앞과 뒤를 가져다가 풀어 헤쳐 놓은 것이야. 풍자인 셈이지. 요즘 개그 프로그램은 말장난이 너무 많아. 후배들이 나름 열심히 하지만, 돈 많이 주는 데만 쫓아다니지 말았으면 해.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 해.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못한다면 코미디의 역할과 의미가 퇴색하는 거야.”

-장로님,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내일모레까지 살라나? 오래 사는 것 원치 않아(이때 부인이 "여보, 지금도 많이 산 거야"라며 웃었다). 이 세상 할 일 다 했어.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내일이라도 갈 거야. 하나님한테 가면 먼저 간 친구들은 잘 있는지 물어볼 거야. '형님먼저 아우먼저' 라면 광고를 같이한 곽 목사가 보고 싶어(안경 너머로 눈물을 훔쳤다). 곽 목사와 호흡이 잘 맞았어. 신용 있는 사람이기도 했고."-그렇군요. 신용 얘기는 뭔가요?

"내가 정확하지 않는 사람과는 상대를 안 했거든. 수위아저씨보다 먼저 출근하는 바람에 수위나 프로듀서들이 힘들어했어. 집에 오면 서재에서 일본책 한 권씩 독파했어. 출연 원고를 숙지했고 각본을 준비했지. 세금도 꼬박꼬박 잘 냈어."구 장로는 바쁜 연예인 생활 중에도 틈틈이 해외선교 활동을 다닐 정도로 하나님께 충실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다. 남몰래 고아원과 정신지체 아이들도 많이 후원했다. 특히 아프리카 우간다 지역에 학교 설립을 지원한 끝에 현지에선 '구봉서학교'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간증집회를 다니며 치유의 기적도 많이 봤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한 것은 없다며 모든 공을 하나님께 돌렸다.

한국교회의 침체 현상에 대해 그는 "근본적으로 글러먹었어. 돈이 다가 아니잖아. 뭘 해주었다고 떠들어대고. 이걸 없애지 않고는 안돼"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말야. 참 이상하지. 딴 때는 괜찮은데 교회 욕하고 목사님 미워하면 꼭 아프더라고"라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끝으로 부인에게 하실 말씀이 있느냐고 묻자 구 장로는 "반찬 좀 잘 해주어…(잠시 침묵). 만날 하는 얘기지 뭐. 사랑한다는 거"라고 말했다. 옆에서 과일을 깎던 정 권사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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