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미나] 소문의 시대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난다. 온라인상에선 특히 그렇다. 알려진 사람들이 주 대상이 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 의해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범인은 어린 학생이나 멀쩡한 직장인, 50대 중년. 종잡을 수가 없이 모두가 이 ‘소문의 시대’를 즐기고 있는 듯하다.

플랫폼의 변화는 있었겠지만 소문의 등장, 그리고 급격한 확산 현상은 유독 오늘날에만 무성해진 것이 아니다. 관동대지진의 조선인 학살 사건이 대표적이다. 1923년 도쿄 인근 관동지방은 규모 7의 지진 직격탄을 맞았다.

해일과 화재, 기상 이변 등이 발생해 도쿄의 60%와 요코하마의 80%가 파괴되고 10만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때 ‘조선인들이 방화하고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는 유언비어가 돌았고 일본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 과정에서 6000명 이상의 조선인이 무참히 살해됐다. 평행이론처럼 지난 4월 일본 구마모토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한때 일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선 “한국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음모론이 돌았다고 한다.

오늘날의 소문이 100년 전처럼 누군가를 실제로 죽이진 않을지라도 큰 후유증을 남긴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이든 아니든 소문은 소문 자체로서 파괴력을 지닌다. 알려지지 않아도 좋을 내용들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또한 확장되고 변형돼 커지면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소문이 사실이고, 또 대중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 내용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면 얘기는 약간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가 듣는 소문은 누군가의 사생활이거나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가십거리가 대부분이다. 온라인을 통해 수많은 정보가 사실 관계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사실 나부터도 그렇다. 취재에 앞서 검색 창에 당사자의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쳐보는 일은 일상이다. 누군가의 정보가 어디에는 남아 있겠지 하는 마음이다. 주변에선 요즘 20∼30대들이 소개팅에 나가기 전 상대방의 SNS에 올라온 사진이나 삶의 방식, 인맥을 확인하고 이름이나 전화번호로 상대방을 구글링(구글 검색) 해본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2014년 유럽사법재판소는 온라인상에서 개인의 정보가 잊혀질 권리를 갖는다고 인정했다. 스페인 출신 변호사인 곤살레스가 구글 검색을 하다가 자신의 집이 강제 경매당한 사실에 관한 기사를 보고 구글에 삭제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것이 발단이었다.

우리나라도 이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잊혀질 권리를 찬성하는 측은 과거 사진이나 기록을 삭제해 스스로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명예를 지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 측은 표현의 자유 이야기를 꺼낸다. 마땅히 검증돼야 할 사람이 과거를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할 수도 있고 반대로 ‘기억될 권리’도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개인의 선택에 따라 과거가 삭제되고 기록이 세탁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지만 최근에는 잊혀질 권리가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조만간 쇼핑몰에 쓴 리뷰나 포털사이트에 적은 지식 공유 내용도 원한다면 ‘잊혀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이 나올 예정이다.

한편으론 스스로의 삶을 자유롭게 표현하려고 하면서도 사생활은 보호하려는 현대인이 유독 타인의 삶 속에 침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쏟아지는 소문들. 그리고 사실 확인의 과정은 집단 지성의 빗나간 발현처럼 보인다. 당사자들은 이런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데 아까운 에너지를 소비한다.

소문을 막을 수는 없다. 때문에 우리에겐 소문에 의존해 결론을 내리거나 편견을 갖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시스템도 필요하다. 원치 않은 소문들이 퍼져나가지 않도록,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안전망이 필요한 시대다. 현재로선 스스로 내 사생활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혼란을 키우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김미나 국제부 기자 mina@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