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韓 혼란 우려한 美 “No!”… 軍 내부도 반발 기류 기사의 사진
학생과 시민들이 1987년 6월 25일 서울역 앞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며 경찰에 맞서 격렬하게 시위를 벌이고 있다. 조선일보 제공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경찰력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6월 10일 있었던 범국민대회 이후 20여일간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 500만명이 거리로 나왔다. 파출소와 경찰차는 대학생들이 던진 화염병으로 불탔다. 전두환정권이 기댈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군대였다. 전두환정권이 시위 진압을 위해 군대 동원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꺼내들지가 마지막 뇌관으로 부상했다. 만약 그때 전두환정권이 군대를 투입했더라면 한국은 거대한 비극의 무대가 됐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군대 동원에 기울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같은 해 6월 19일 오전 10시 국방장관과 각 군 수뇌부, 안기부장을 불러 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주요 도시와 대학에 군 병력 투입이 사실상 결정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정권이 군대 동원이라는 최악의 수를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은 미국의 노력, 군 내부의 반발, 전두환정권 내부의 이견, 88서울올림픽이라는 변수, ‘5·18민주화운동’의 교훈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전두환정권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미국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한국 군대와 시민들 간의 대충돌로 남한이 카오스 상황에 빠지는 것은 미국에도 전혀 이로운 일이 아니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다. 내용은 자제와 민주화 조치 촉구였지만 행간의 메시지는 군 병력 동원 반대였다. 조지 슐츠 국무장관은 6월 19일 “미국은 한국의 계엄령 선포에 반대한다”고 미리 경고하고 나섰다. 미 국무부는 6월 22일 “현재의 한국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군부가 개입하지 마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군 내부의 반발도 중요한 요인이다. 시위 진압 준비태세에 놀란 영관급 장교들은 군대를 동원할 경우 엄청난 파국이 초래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노태우 민정당 대표 측에 보냈다. 87년 대통령 선거에 민정당 후보로 이미 선출됐던 노 대표는 군대 동원이 향후 자신의 정치적 진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대 동원을 놓고 정권 내부에서 이견이 발생한 것이었다.

전 대통령은 또 군부가 단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군대를 동원했다가 자신이 12·12사태 때 상관들에게 했던 것처럼 젊은 군인들이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 않을까 우려했다. 군대 동원이 ‘반(反)전두환 쿠데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88올림픽이 1년 3개월도 안 남은 상황에서 유혈사태가 빚어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5·18민주화운동’의 눈물은 이 땅에서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군이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갖다 대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전사회적 반성이 전두환정권을 포위했다. 군대가 한국정치에 다시 등장할 경우 500만명이 아니라 전 국민이 정권 반대를 외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6월 민주항쟁 당시 군대가 거리가 아닌 병영에 머물 게 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美정부 기밀해제 문서 단독 입수 모두 보기 클릭]

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