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두환 “YS·DJ의 민주화, 자신들이 대통령 되는 것” 기사의 사진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들불처럼 확산되자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시국수습을 위한 ‘6·29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은 노 대표를 통해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등을 포함한 8개 항의 시국수습 방안을 발표하도록 한 뒤 7월 1일 특별담화를 통해 6·29선언을 전폭 수용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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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前 대통령 6·29선언 전 美 정·관계 인사들 회동 문서 분석
민주화 요구가 들불처럼 확산됐던 1987년 상반기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미국 정·관계 인사들을 세 차례 만났다. 87년 3월 6일에는 조지 슐츠 국무장관을 만났고 4월 17일에는 민주당 소속 스티븐 솔라즈 연방 하원의원과 회동했다. 6월 24일에는 개스틴 시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를 만났다. 세 차례 회동에 모두 배석했던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전 대통령의 발언을 기록해 국무부에 보고했다. 국민일보는 이 3건의 기밀해제 문서를 모두 입수했다. 특히 ‘6·29선언’ 닷새 전인 6월 24일 시거 차관보와의 회동을 기록한 문서는 6·29선언 직전 전 대통령의 심경과 의중을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이다.

“개헌 합의 못하면 현행 헌법으로 권력 이양”

전 대통령이 시거 차관보를 만났을 때 던진 개헌 관련 발언은 6·29선언 발표를 둘러싼 비밀을 푸는 데 중요한 단초다.

전 대통령은 “여야의 합의 개헌 노력을 지지한다”면서 “합의 개헌이 내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뤄져도 좋고, 나는 시한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88년 2월까지 새로운 헌법이 등장한다면 새 헌법에 따라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며 “그렇지 않다면 현행 헌법에 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이 말한 현행 헌법의 핵심은 대통령 간선제였다.

물론 전 대통령이 시거 차관보에게 대통령 직선제 수용을 내용으로 하는 6·29선언 내용을 미리 말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군부 동원 가능성을 언급하며 미국의 지지를 요청한 데 이어 “현행 헌법에 따라 권력을 이양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6·29선언이라는 극적인 상황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어떤 조짐도 없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6월 24일까지만 해도 6·29선언에 대해 전 대통령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있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김영삼·김대중 민주화 자신들 대통령 되는 것”

전 대통령은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전 대통령은 솔라즈 의원을 만난 자리에서 “김영삼 버전의 민주화는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고, 김대중 버전의 민주화는 김영삼을 물리치고 김대중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양김씨의 민주화 요구를 권력욕으로 치부한 것이다.

또 “미국에서는 야당이 약속을 지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우리는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한다”면서 “우리는 김영삼과 김대중한테 속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전 대통령은 슐츠 장관을 만나서는 “올림픽과 권력 이양의 중대한 시점이 다가오자 많은 야당 인사들은 지금이 공격할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야당은 그들의 지도자가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야당, 화염병 던지는 사람들 환심 사려고 노력”

전 대통령이 미국 인사들과의 회동에서 야당을 비판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그는 야당이 대통령 직선제를 주장하며 국회 밖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전 대통령은 “의원내각제, 대통령 직선제, 이원집정부제, 대통령 선거인단제, 입헌군주제 등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면서 “한국 야당은 국회를 무시하고 거리로 나간다”고 주장했다.

이어 “일반적인 국민들은 법을 존중하지만 일부 야당 인사들은 그들이 법 위에 있다고 느끼고 과격한 행동을 저지른다”면서 “그들은 시위를 선동하고 과격 학생과 노동자들을 동원하며 민주주의를 쟁취한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일삼는다”고 몰아붙였다. 또 “그들은 화염병을 던지는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한다”면서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파시즘에 대항한 투쟁이고, 민주주의를 위한 거룩한 투쟁”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합법적인 야당은 급진세력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야당에 대한 전 대통령의 인식이 이러했으니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위 학생, 뉘우치면 풀어준다”

미국은 사태 수습을 위해 정치범 석방 등을 전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하지만 전 대통령은 자기변호에 주력하며 강경하게 나왔다.

그는 “대학생들이 경찰을 장애인으로 만들었을 때조차 우리는 대학생들에게 관대하다. 우리가 그들을 붙잡았을 때 ‘미안하다’고 말하면 풀어준다. 우리는 그들의 사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들이 자신이 저지른 잘못된 일에 대해 사과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사과를 거절하면 우리는 그들을 풀어줄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뉘우치면 사면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법”이라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이 ‘6월 민주항쟁’을 촉발시킨 박종철·이한열군 사망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경찰을 비판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그는 “경찰의 가혹행위가 정부에 타격을 입힌다”면서 “경찰에 조심하라고 당부했지만 계속 정부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고 경찰 탓을 했다.



“이승만·박정희 심정, 어느 정도 이해”

전 대통령은 영구집권을 노리다가 비극적인 결말을 자초했던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동병상련의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4·19혁명’과 ‘반(反)유신 시위’에 대해서도 ‘통제되지 않은 상황’이라는 표현을 쓰며 부정적인 시선을 드러냈다. ‘6월 민주항쟁’으로 고립됐던 자신의 처지를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이 처했던 곤경에 빗댄 것이었다.

전 대통령은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영구집권을 시도했다. 그들은 권력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해야만 했던 것은 하야였다. 전두환은 그들이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 의해 선동됐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과 자신을 차별화했다. 전 대통령은 “과거 지배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헌법 조항을 억지로 통과시키며 영구집권을 시도했다. 그렇게 되면 헌법은 권력투쟁의 도구가 된다. 이번만은 내가 헌법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이 점에서 국민들이 나를 지지한다”고 강변했다.



“임기 마치고 퇴임…민주주의 향한 필수 조치”

전 대통령은 “야당이 내가 영원히 대통령을 하고 싶어 한다는 루머를 계속적으로 확산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헌법을 존중하며 88년 2월에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것”이라고 미국을 안심시켰다. 그는 자신의 퇴임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한국 역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처음”이라며 “민주주의를 향한 필수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또 “내가 퇴임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99%는 실패하는 것”이라며 “이런 전례가 없기 때문에 많은 추측들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전 대통령은 “우리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나는 올림픽 준비와 외교 문제, 권력 이양 문제 등에 집중하며 행정수반으로서 남은 임기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영국을 방문했을 때 마거릿 대처 총리가 나한테 한국 헌법을 읽어봤는데 틀린 데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절박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또 “나에게 올림픽을 치른 뒤 퇴임할 것을 권하는 일부 미국인들도 있으나 어떤 것도 내가 2월 퇴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막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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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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