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 강남훈 교수 “공유자산 기본소득 주인은 온 국민이죠” 기사의 사진
강 교수는 인터뷰에서 기본소득 도입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여러 실험을 거쳐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기본소득 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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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은 우리에게 낯선 개념이다. 지난 5일 모든 국민에게 월 300만원가량의 기본소득을 줄지 여부를 묻는 스위스의 국민투표 소식이 보도되면서 그나마 국내에 제법 알려졌다. 이전까지는 일부 학자들 중심의 조직이나 진보정당 등이 관심을 갖고 논의를 확장시키는 정도였다. 스위스 국민투표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으나 여전히 궁금증이 적지 않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문제점은 무엇이고 우리 현실에 적용 가능한지 등 대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본소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모임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60·경제학과)를 지난 15일 국민일보 본사 회의실에서 만났다. 그는 기본소득 도입의 당위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실험 과정을 거치는 등 관심을 갖고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7월 초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서울에서 열리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제16차 국제대회 준비를 마무리하느라 무척 바쁘다고 했다.

-기본소득이 뭔가.

“재산의 많고 적음이나 근로 여부에 상관없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매월 일정 수입을 주는 것이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고 동일한 액수를 가족 단위가 아닌 개인에게 어떤 반대급부 없이 준다는 점에서 무조건적 기본소득이라고도 한다. 반드시 돈으로 줘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무상 교육이나 의료, 급식도 해당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 후보가 65세 이상 전 국민에게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주겠다고 한 공약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이름만 다를 뿐 우리도 사실상 기본소득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왜 기본소득인가.

“세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복지와 일자리, 권리의 관점이다. 복지의 시각으로 보면 가난한 사람들의 낙인효과를 막자는 것이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기술적 실업의 대안적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인공지능 같은 급속한 기술 혁신으로 비자발적 실업자가 어쩔 수 없이 양산되는 시대다.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갈수록 일자리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방점은 천부적 권리에 있다. 토지나 천연자원 같은 공유자산에서 얻는 소득은 공평히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는 의미다. 미국 알래스카주의 경우 1974년 ‘알래스카영구기금’을 만들어 82년부터 원유 채굴에서 얻는 수입의 일부를 주민들에게 조건 없이 나눠주고 있다. 일정 기간 이상 거주한 사람은 누구나 받는다. 대략 1인당 연간 2000달러선이다. 기본소득에 관한 가장 선도적인 사례다. 알래스카는 미국에서 빈곤 인구가 제일 많았는데 지금은 지니계수가 가장 낮은 주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등이 가장 적다는 의미다. 이 덕분인지 범죄율과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크게 낮다.”(인터뷰 후 알래스카에 사는 지인에게 알아봤더니 지원 대상은 알래스카에 1년 이상 거주한 시민권 또는 영주권자이며 작년에는 1인당 2200달러가 지급됐다고 했다).



-기본소득의 성격이 지나치게 좌파적 시각 같은데.

“그렇지 않다. 기본소득 개념은 경쟁과 효율을 지상 과제로 삼은 신자유주의의 창시자라 일컬어지는 하이에크는 물론 신자유주의 이론적 대부로 알려진 밀턴 프리드먼이나 제임스 뷰캐넌 같은 노벨상 수상 경력의 보수주의 경제학자들도 주장했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튼튼한 중산층을 주창하며 유사한 개념을 차용했고,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되는 바람에 시행은 못 했지만 마이너스 소득세 형태로 가구당 연간 1600달러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안을 냈고 하원의 승인도 받았다. 60년대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서 킹 목사 역시 기본소득운동을 강조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계획했던 운동이 ‘빈자들의 행진’이었는데, 이 캠페인의 핵심이 모든 미국인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최근 2∼3년 전부터 미국에서 기본소득이 다시 본격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교수 등 학자들 중심으로 논의가 활성화되는 동시에 성공한 젊은 벤처기업가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실리콘밸리 벤처 인큐베이터인 Y컴비네이터가 대표적이다. 며칠 전에는 워싱턴DC 시의회에서도 기본소득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기본소득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같이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개념이 아니다. 현재의 사회복지체계에 대한 또 하나의 보완책으로 보면 된다.”



-우리 실정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부자들까지 지원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고 근로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 같은 부작용이 상당하지 않겠나.

“재분배의 역설이란 개념이 있다. 스웨덴인 발테르 코르피와 요아킴 팔메교수가 1998년 논문에서 제시했다. 부자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주는 이유가 궁극적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더 이득이 된다는 논리다. 저소득층에게만 선별복지를 할수록 저소득층의 복지혜택이 오히려 줄고, 중산층을 포함해 보편복지를 할수록 가난한 사람이 받는 금액이 늘어나는 현상이 생긴다. 보편복지를 시행하면 혜택을 받는 중산층 스스로 증세에 찬성하고 전체적으로 복지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결국 기본소득의 핵심은 중산층인 셈이다. 중산층이 어떤 입장을 갖느냐가 기본소득 도입 성패의 관건이다. 도덕적 해이와 관련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실험을 해 본 결과 임신과 자기개발 교육 기간 등을 제외하고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무작정 놀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됐다. 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있는 일을 찾아서 한다.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이 되기 때문에 벤처창업 같은 모험을 시도하는 등 노동유인이 커지면서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지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전제돼야 하는 등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언제쯤이면 가능하겠나.

“물론 사회적 합의가 대단히 중요하다. 주목하는 것은 얼마 전 김종인 유승민 김세연 의원 등이 만든 국회 입법연구 단체인 ‘어젠다 2050’에서도 기본소득을 의제로 검토하겠다고 하는 등 사회적으로 논의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소득엔 여야,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복지가 늘어나려면 증세는 당연한 것이다. 현재 GDP 대비 24% 정도인 총조세수입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34% 정도로 10% 포인트 정도 올리면 가능하다고 본다. 중산층의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은 무엇보다 중산층에도 확실히 이익이 된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안된다고 생각하면 아예 할 수 없다. 언제쯤 우리나라가 기본소득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는 확언할 수 없다. 도입에 앞서 실험을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20대 500∼1000명에게 월 30만원 정도의 기본소득을 일정 기간 지급한 뒤 대조군과 비교해 사회적 기여를 평가하는 식이다. 외국에서는 이미 이 같은 실험을 많이 진행하고 있다.”



-300만원 정도를 매달 무상 지급키로 한 스위스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 사회복지가 잘 돼 있고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몇 배 많은 나라의 국민들도 반대했는데.

“팩트가 잘못 알려졌다. 300만원을 무조건 준다는 것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헌법에 ‘모든 국민은 기본소득의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을 넣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묻는 투표였다. 액수와 재원조달 방법은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300만원은 헌법 개정안을 제안한 기본소득 운동단체들이 하나의 예시로 든 것일 뿐이다. 스위스에서는 이 정도 금액이 돼야 기존의 선별복지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1인당 월 300만원을 지급할 경우 기본소득 예산은 스위스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이다. 기본소득은 이보다 적은 예산, 예컨대 GDP의 3% 수준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 스위스에서 77%의 반대표가 나왔다고 해서 이 운동이 전적으로 실패했다고 봐서는 안 된다.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율은 캠페인 과정에서 계속 높아졌다. 조만간 스위스에서 다시 국민투표가 실시될 것이 확실시된다. 새로운 생각을 들으면 처음에는 어색하고 수용하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이 무엇인지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기본소득에 대한 외국의 움직임은.

“각국의 주요 정당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캐나나 집권당인 자유당은 전당대회에서 평당원들의 발의로 기본소득을 당의 정책으로 채택했다. 영국 노동당은 선거 공약으로 단계적 기본소득을 내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스위스 국민투표를 계기로 많은 나라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추진 중이다. 가장 주목되는 곳이 핀란드다. 내년 1월부터 1만명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 뒤 성과를 보고 확대 여부를 결정한다. 네덜란드도 도시 19곳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한다. 캐나나 온타리오주는 올 하반기에 실험하기로 했고, 프랑스 일부 도시에서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나미비아 우간다 케냐 인도 등에서도 실험을 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제16차 국제대회는 어떤 행사인가.

“23개국에 기본소득네트워크 지부를 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의 국제적 행사다. 창립 3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아시아에서 열린다는 데 의미가 있다. 대회 주제는 ‘사회적·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며 7월 7일부터 9일까지 서강대 다산관에서 열린다. 신자유주의 이후 기본소득 역할, 사회적 약자의 실질적 시민권 강화 과정에서 기본소득의 위치, 인공지능 발전과 기본소득의 관계 등에 대해 국내외 활동가, 연구자, 정치인들이 모여 논의하는 자리다. 심포지엄, 영화제, 전시회 등 여러 프로그램이 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면 좋겠다.”

강 교수는 누구

1979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그곳에서 석·박사 학위를 땄다. 85년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로 부임, 미시경제학, 가치이론 등을 가르치고 있다.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창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한국에 적합한 기본소득 재정 모형 등 기본소득 관련 논문을 여럿 발표했다. 공저로 ‘기본소득운동의 세계적 현황과 전망’ ‘기본소득의 쟁점과 대안사회’ 등이 있다. 연말쯤에는 ‘인공지능과 기본소득의 권리’에 관한 책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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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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