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손수호] 8년만에 핸들을 다시 잡은 이유 기사의 사진
자가용 2000만대 시대가 열린다는 뉴스를 보고 뜨끔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가구당 1.55대, 2가구당 3대의 차량을 보유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도둑이 제 발 저리듯 2007년 12월에 쓴 칼럼이 생각났다. 당시 나는 ‘자동차를 버리고 나니’라는 글에서 자가용과 이별한 후의 심경을 적었다. 자유롭다느니, 매달 60만∼70만원이 절약된다느니, 책을 많이 읽는다느니, 경찰이 친숙하다느니, 지구온난화 방지에 기여한다느니….

맞는 말이긴 하다. 지루한 할부의 굴레를 벗어나서 좋았고, 퇴근길에 친구들이 번개를 치면 기다렸다는 듯 응했다. 집 근처에 단골주점도 만들었다. 하루 지하철 이용시간이 90분에 이르니 ‘채식주의자’를 사흘 만에 읽었다. 주말 모임에 차를 끌고 왔다가 곤경에 빠진 동료를 보고는 딱하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이러던 내가 다시 자동차를 산 이유는 생활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디에 가고 싶을 때 스스로 실행할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이런 차이는 생각과 태도를 좌우하고, 결국 삶의 구체성에 영향을 미친다.

한번은 하늘공원과 한강을 잇는 구름다리에서 아래를 오가는 자동차 행렬을 보았는데, 아찔했다. 자동차 무리는 넓은 자유로를 질풍처럼 달리면서도 정돈된 질서를 지키고 있었다. 다시 운전대를 잡으면 저 대열에 낄 수 있을까, 저 속도감과 거리감에 적응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나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사적 공간의 측면도 중요했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의 도구를 넘어 자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독립공간의 성격이 있다. 한적한 곳에 차를 세우고 잠을 청하기도 하고, 야구를 보고, 텀블러를 기울여 커피를 마신다. 자동차는 카페나 다름없다.

그뿐인가. 젊은이라면 연인과 밀어를 속삭이기 좋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미래를 설계하는데도 그만이다. 트렁크에서 운동화를 꺼내 달리기를 하고, 접이식 자전거를 꺼내 사이클링도 가능하다. 자식에게 운전기술을 전수하는 것도 각별한 기억이리라.

이 특별한 공간을 얻기 위해 들이는 비용을 따져봤다. 중형차 한 대 값이 대충 2000만∼3000만원 선이니 아파트로 따지면 한 평 값에 해당한다. 자동차의 감가상각과 교통기능을 상쇄한다면 결국 차 한 대 값이 아파트 한 평의 가격과 비슷하다는 계산이다. 아파트 한 평을 얻고 기동력까지 덤으로 주니 괜찮은 셈 아닌가.

물론 나눔카도 안다. 취지도 훌륭하고, 사업성도 있으나 약점이 있다. 언젠가 집 가까운 스테이션에 예약을 하고 나갔는데, 차가 없었다. 알아보니 먼저 빌린 사람이 사정이 생겨 제 시간에 반납을 못했다. 당사자야 이용료를 더 내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식구들 보기가 미안했다.

그래도 자동차는 문제가 많다는 걸 인정한다. 좁은 국토에 자가용 2000만대는 곤란하므로 적절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 다만 자동차의 기계적 측면 외에 인간심리와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하면 훌륭한 정책이 나오리라고 본다. 무조건 자동차를 적대시하는 것은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니 인문적 차원에서 공존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8년 만에 다시 핸들을 잡았더니 잃은 것은 책이요, 얻은 것은 음악이다. 그동안 버스와 지하철의 소음 속에서 잊고 지냈던 음악의 세계가 새롭다. 퇴근길에 비라도 오면 한참 동안 클래식을 듣다가 내린다. 그래도 예전처럼 무분별한 운전은 하지 않겠다. 손꼽아보니 지난주에도 사흘은 자동차를 두고 나왔다. 50대의 밤은 아직도 분주하므로.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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