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두환 ‘6월 민주항쟁 진압’ 軍 투입 검토했다 기사의 사진
‘6·29선언’이 나오기 닷새 전인 1987년 6월 24일 전두환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개스틴 시거 미 국무부 차관보를 면담하며 대화한 내용을 배석한 제임스 릴리 주한 미국대사가 국무부에 보고한 문서. 전 대통령은 공공안전이 무너질 경우 무력을 동원할 수 있고 최악의 경우 내전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며 미국이 반란세력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출처=미국 디지털 국가안보 기록보관소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 동원을 검토했던 사실이 미국 정부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6·29선언’ 닷새 전인 87년 6월 24일,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개스틴 시거 미 국무부 차관보를 만나 “공공안전이 완전히 사라지고 무정부 상태가 발생할 경우 정부는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적인 무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 대통령은 또 내전으로 치닫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거론하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국가를 파괴하려는 반란세력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 대통령은 군대 동원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공공안전의 완전한 소멸’, ‘무정부 상태’, ‘내전으로 치닫는 최악의 시나리오’ 등 표현을 사용했다. 만약 전두환정권이 군대를 투입했다면 ‘5·18민주화운동’을 초월하는 유혈참극이 벌어질 수도 있었으나 정권 내부의 이견 등으로 최악의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국민일보가 28일 입수한 ‘시거 차관보와 전두환 대통령의 회동’이라는 제목의 미국 정부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회동에 배석했던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전 대통령의 발언 내용을 국무부에 보고했던 문서다.

‘6월 민주항쟁’ 당시 군대 동원과 관련한 전 대통령의 발언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서에서 전 대통령은 반정부 세력에 대해 강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으며 자신의 업적을 과대평가했다.

87년 6월 23일 방한했던 시거 차관보는 24일 오후 청와대에서 전 대통령을 90분 동안 만났다. 6월 민주항쟁으로 벼랑에 몰렸던 전 대통령은 같은 날 오전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 등 야당 총재들과 연쇄회담을 갖고 시국수습 방안을 논의했다.

전 대통령은 시거 차관보에게 경제 같은 이슈들에 대해 매우 잘 대처해 왔기 때문에 반대세력이 개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어 “87년을 격동의 해라고 판단했지만 최근 몇 주간 폭력은 예상보다 심했다”고 토로했다.

전 대통령은 또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하면 미국은 한국정부를 지지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손 쓸 수 없는 상황으로 가는 것은 한국이나 미국 정부에 위험 부담이 크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전 대통령이 군대 투입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을 시거 차관보에게 꺼낸 것은 군대를 동원하더라도 미국의 지지를 잃지 않으려는 사전 포석으로 보인다.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엄청난 상황이 전개되지 않는다면 군대 동원에 의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서도 군대를 동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영삼 총재와의 회담 내용을 시거 차관보에게 설명하며 “김 총재가 민주화에 대한 개념정의 없이 민주화만 계속 요구했다”고 비꼬았다.

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영구집권하려고 노력했으나 나는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날짜를 정해 퇴임하는 첫 대통령”이라고 자화자찬한 뒤 “법이 정한 임기를 지키려고 하자 반대세력이 ‘레임덕’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반(反)정부 세력을 정치인, 공산주의자, 성직자 등 세 가지 그룹으로 분류했다. 특히 “미국의 성직자들은 낙태를 반대하지만 한국 교회에 있는 반정부 성직자들은 정부 전복을 이야기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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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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