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도영] ‘정운호 법조비리’가 남긴 질문들 기사의 사진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이 처음 언론에 꼬리를 드러낸 것은 4월 22일 금요일이었다. 서울 강남경찰서를 담당하는 기자의 보고였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구치소에서 70년생 여자 변호사를 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했습니다. 성공 보수와 착수금 분쟁이라고 합니다.” 정운호라는 이름도 처음 들었고, 구치소에서 변호사가 폭행당했다는 얘기도 금시초문이었다. 추가 취재를 지시했다. 몇 시간 뒤 들어온 보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최유정 변호사 측은 착수금이 20억원이었고, 성공보수금이 30억원이었다고 말합니다. 성공보수금 30억원은 돌려줬다고 합니다.” “2억원이 아니라 20억원인가”를 두세 차례 물어야 했다.

폭행 사건은 원고지 4장에 담겨 토요일자 신문 사회면에 실렸고,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다. 언론의 취재가 본격화되면서 법조비리의 윤곽들이 드러났다. 거물 전관 홍만표 변호사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취재가 시작된 직후였다. 법조 브로커와 현직 판사의 부적절한 접촉, 매우 의심스러운 구형과 집행유예, 수십억원의 수임료, 전화변론, 부적절한 청탁 등이 확인됐다. 현직 판사와 검사들의 이름도 확인됐다. 싹쓸이 수임으로 수백억원 재산을 모은 홍 변호사가 오피스텔 건물 몇 개층을 싹쓸이 구입한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5월 3일 최 변호사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수사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5월 9일 최 변호사가 체포됐고, 다음날인 10일 홍 변호사 집과 사무실이 압수수색됐다. 11일 최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30일에는 홍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검찰은 지난 20일 홍 변호사를 구속 기소하며 “봐주기 수사는 없었고, 로비 의혹은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검찰은 아직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운호 법조비리 수사는 사실상 종료됐다. 언론이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을 지적하고, 정치권의 비판도 나왔다. 그럼에도 ‘로비는 없었다’는 검찰의 결론은 바뀔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검찰의 수사 결론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은 수사의 결론을 예상했고,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정운호 법조비리 사건의 가장 큰 성과는 ‘그들만의 리그’가 상세하게 공개됐다는 데 있다. 전관 변호사들과 재력가들 사이에서 이뤄지던 은밀한 검은 거래의 실상이 꽤 상세히 드러났다. 자리에서 물러난 벼슬아치를 정중하게 대한다는 ‘전관예우’가 실제로는 공권력을 이용한 특혜 제공이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앞으로 전관예우의 모습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전관 변호사 때문에 재판에서 졌다”고 한탄만 했던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의혹을 제기할 것이고, 언론을 필두로 한 사회적 감시망도 더욱 촘촘해질 것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전관을 없애자는 과격한 주장마저 내놓았다.

검찰은 매우 근원적인 질문을 받게 될 것이다. “검찰의 비리 의혹을 검찰이 수사하는 게 맞는가”라는 질문과 “왜 기소권을 당신들만 독점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처음 제기되는 질문이 아니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률이 제출된 이후 10년 이상 꾸준히 제기됐던 질문들이다.

지금까지 검찰은 늘 승리해 왔다. 공수처 관련 법률은 늘 폐기됐고, 몇 차례 검경 수사권 조정 갈등에서도 검찰이 이겼다. 그러나 과거의 승리가 미래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검찰 승리의 근저에는 거악(巨惡)을 향해 거침없이 칼을 휘둘러가는 이미지가 있었다. 검찰의 공이 검찰의 과보다 많다는 국민들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요즘 검찰의 모습이 그런가. 부끄러운 이미지가 더 많이 떠오른다. 남도영 사회부장 dyna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