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웅 회장 “구월산 반공청년단장 형님 명예 찾아주세요”

6·25전쟁 때 전사한 유은웅 단장의 동생 유준웅 회장

유준웅 회장 “구월산 반공청년단장 형님 명예 찾아주세요” 기사의 사진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서울을 찾은 유준웅 회장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에서 돌아가신 부모와 형을 생각하면서 아득한 미소를 짓고 있다.
“구월산 반공청년단장으로 6·25전쟁 때 전사한 형님의 명예를 찾고 싶습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29일 서울에 온 재호주국민생활체육회 유준웅(77) 회장은 “제적등본(호주제 폐지 전 호적등본) 등 몇 가지 서류가 필요하다”는 (국방부) 당국의 입장을 전해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열 살 때, 김일성대학 건축과에 합격하고도 반공청년단 활동을 하던 일곱 살 터울 은웅 형이 9·28서울 수복 직후 재령전투 때 인민군의 총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유 회장은 1940년 만주벌판 한가운데에 자리한 중국 사평에서 태어났다. 광복되기 1년 전 다섯 살 때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가 터지는 바람에 왼팔을 잃은 유 회장은 남은 오른 손에 모든 것을 걸었다고 했다. 일제의 만행을 피해 황해도 사리원을 떠나온 유 회장의 부친은 만주 봉천 서탑교회에서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유 회장의 부친은 벽돌공장을 운영하면서 독립군 자금을 대는 등 애국활동을 펴다가 광복 이듬해 불의의 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났다.

집안의 수난은 시작에 불과했다. 황해도 구월산 반공청년단장으로 활동하던 형마저 인민군 총탄에 희생되는 비극을 맞았다. 남은 가족은 남쪽으로 밀려나 경남 마산에서 피란민수용소 생활을 했다. 찌그러진 어머니의 재봉틀이 여섯 식구의 희망이었다.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로 소년가장 역할을 하던 ‘외팔이 소년’은 중학교 때 모친의 기도로 서울로 올라와 대광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신학과 1학년 때 천호상업전수학교를 설립해 불우 청소년에게 희망을 심어줬다.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유 회장은 71년 브라질로 이민, 원단사업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후 유 회장은 78년 호주로 2차 이민을 가 영어 어학원(APC·Australian Pacific College)을 설립 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는 또 재호주 솔리데오 합창단 단장, 도산안창호기념사업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97년 목사 안수를 받은 유 회장은 매년 6월이 오면 6·25전쟁 때 사별한 큰 형이 보고 싶어 북녘 하늘만 바라보고 기도를 드린다고 했다. “고개를 돌리면 죽음이었고, 자고 일어나면 죽음이었습니다. 손이 하나 없어진 것을 안타까워하거나 서러워할 여유가 없었지요. 형님처럼 불의에 소신을 굽히지 않는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습니다. 난리 통에도 성경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던 어머니는 제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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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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