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이번엔 목수? 신학대에 목공실은 왜 차렸나

고양 참포도나무교회 안준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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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호 목사가 27일 서울 감리교신학대 목공소에서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진행한 강좌 ‘선교와 목공예술’을 설명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안준호(46·고양 참포도나무교회) 목사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12월이었다. 당시 안 목사는 경기도 고양 백석동에 있는 교회 1층에서 카페 ‘커피마을’을 직접 운영하는 ‘바리스타 목사’였다. 그는 세월호 참사 추모 행사가 열릴 때면 현장에 달려가 참가자에게 따뜻한 커피를 선물하곤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그는 ‘목수 목사’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감리교신학대에서 ‘선교와 목공예술’이라는 강좌를 진행하면서다.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매주 목요일 오전 9시부터 약 3시간동안 진행된 강좌에는 이 학교 대학원생 24명이 수강했다. 안 목사는 어쩌다 ‘목수 목사’로 변신한 걸까. 그가 목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목공, 그 속에 담기는 신앙=지난 27일 안 목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은 감신대 한 건물 1층에 있는 목공소였다. 감신대는 ‘선교와 목공예술’ 강좌를 앞두고 안 목사에게 99.1㎡(약 30평) 크기의 작업장을 제공했다. 톱밥이 켜켜이 쌓인 목공소 곳곳엔 톱 대패 망치 같은 연장이 널려 있었다.

안 목사는 “예술이라는 게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지 않냐. 목공을 통해 신앙을 드러내는 게 강좌의 내용이었다”고 했다. 이어 “강좌가 진행되는 내내 학생들 반응이 뜨거웠다”며 미소를 지었다.

감신대에 목공소가 만들어지고 강좌까지 개설된 배경을 설명하려면 지난해 가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안 목사는 이 학교 박창현 교수와 식사를 하다가 목공수업 개설을 건의했다. 학생들이 선교사가 돼 해외 오지로 나갔을 때를 대비해 목공을 배워두면 유익할 것 같아서였다.

박 교수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안 목사는 강의계획서를 작성해 학교에 제출했다. 수업에 필요한 연장과 자재 구입비는 고양 일산광림교회(박동찬 목사)에서 지원 받았다. 강좌는 개설됐고, ‘선교와 목공예술’은 수강신청 시작 5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화제가 됐다. 학생들은 안 목사로부터 8주간 이론 강좌를 들은 뒤 직접 강대상 성찬상 같은 성가구(聖家具)를 만들었다.

“목공은 실용성이 강한 분야여서 ‘예술’보다는 ‘기술’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 자신의 사상과 영성을 담아낸다면 목공이 예술이 되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학생 중에는 나무로 성가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신앙이 성장한 느낌을 받았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혼이 담긴 성가구 만들고 싶어”=안 목사가 목공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2009년이었다. 교회 카페 ‘커피마을’을 만들 때였다. 공사비가 예산을 크게 초과하자 안 목사는 카페에 필요한 가구를 직접 만들기로 결심하며 목공을 시작했다. 이때까지 그는 나무를 다루는 것에는 젬병이었다.

“목공이 정말 재밌더군요. 나무를 만지면서 영적인 힘이 생기는 걸 느꼈어요. 나무를 깎고 다듬으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를 하게 되더라고요. 노동의 어려움도 실감했죠. 베네딕트수도원의 모토가 ‘기도하고 노동하라’인데, 나무와 씨름하니 노동을 통한 영성을 느끼게 되더군요.” 목수로서의 꿈은 자신만의 성가구를 만드는 것이다. 안 목사는 “기독교 예술의 핵심은 ‘거룩한 비움’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 걸맞은 성가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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