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국·소련 맞붙은 농구 준결승전… 韓 국민들 소련 열렬히 응원 기사의 사진
88서울올림픽 미국과 소련의 남자농구 준결승전에서 승리한 소련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반미감정으로 당시 한국 국민들이 소련을 열렬히 응원해 ‘모스크바 홈경기 같았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사진공동취재단
복합적 요인 결합 반미감정 확산

1988년 9월 28일 잠실체육관. 88서울올림픽 남자농구 준결승전에서 미국과 소련이 맞붙었다. 72년 뮌헨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재격돌하는 빅매치였다.

하지만 승부보다는 한국의 반미감정이 극명하게 드러난 경기로 더욱 주목받았다. 관중들은 소련을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손으로 흔들 수 있는 붉은 소련 국기 수백 개가 나부꼈다. 미국 선수가 자유투를 던질 때는 야유가 쏟아졌다. 소련이 82대 76으로 미국을 누르자 경기장은 환호로 뒤덮였다. 한 외신 기자는 “소련의 모스크바 홈경기 같았다”고 표현했다.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국민들의 자제를 호소할 정도였다. 미국 언론들은 6·25전쟁 당시 북한을 도왔던 소련을 응원하고 남한을 위해 싸웠던 미국에 야유를 퍼붓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한국에서 빚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88올림픽 안전 개최를 위해 노력했던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에 불만을 전달했다.

당시 반미감정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였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미국의 책임론과 당시 미국의 한국 시장 개방 압력은 반미감정이 불붙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여기에다 미국이 한국을 얕본다는 느낌을 주는 사건·사고가 불씨 역할을 하면서 반미감정은 폭발했다.

주한미군 관련 사건들은 반미감정을 야기하는 고정 레퍼토리였다. 주한미군의 10대 자녀 2명이 한국인 임신부를 폭행한 사건, 술 취한 주한미군들이 택시 요금을 내지 않고 이에 항의하는 택시기사에게 칼을 휘둘러 중상을 입힌 사건이 잇따랐다.

미국 언론의 한국 비판 보도는 반미감정을 확산시켰다. 미국 내 올림픽 독점 중계권을 보유했던 NBC방송은 올림픽 개막 이전부터 ‘사창가 실태’, ‘미군 PX 물품 유출’ 등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만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반미감정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특히 NBC는 편파판정에 흥분한 한국 복싱 코치들이 링 위에서 심판에게 난동을 부린 장면을 생중계해 한국을 국제적 웃음거리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샀다. 그 후 복싱 경기장에 ‘우리는 미국을 싫어한다’고 쓰인 플래카드를 든 여고생들이 등장했다.

미국 선수들의 오만함과 탈선도 반미감정을 부추겼다. 일본에서 훈련했던 세계적 육상 스타 칼 루이스는 88올림픽 참가를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자 “귀찮게 하면 일본으로 돌아가겠다”며 무례함을 보였다. 수영 2관왕 선수는 술을 마시던 호텔 바에 전시됐던 석고사자상을 훔치다 붙잡히기도 했다.

미국 언론들은 대학생과 일부 재야인사에 국한됐던 반미감정이 고교생을 비롯해 한국의 전 국민에게 확산됐다고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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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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