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美 “88올림픽 北 테러 절대 안돼” 소련 협조 공들여 기사의 사진
1988년 9월 17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88올림픽 개최를 알리는 성화 점화식이 진행되고 있다. 당시 성화 점화자는 87년 6·29선언으로 탄생한 노태우정부의 분위기에 맞게 섬마을 선생님 정선만씨와 마라톤 선수 김원탁씨, 여고생 손미정양 등 ‘위대한 보통사람들’로 결정됐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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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국가적 대사 둘러싸고 긴밀했던 주변국 움직임

88서울올림픽은 한국 민주화 과정에서 ‘두 개의 얼굴’을 가진 국가적 대사였다. 전두환정권은 88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악용했다. 전두환정권은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이유로 개헌을 늦추려고 하다가 전 국민적 반발을 자초했다. 그러나 88올림픽이 한국 국민들의 자긍심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는 데 이의는 없다.

88올림픽의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테러 가능성이었다. 미국이 88올림픽의 안전 개최에 기여했던 점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미국은 소련을 향해 북한이 테러를 기도하지 않도록 설득해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까지 나섰다.

소련은 “북한의 테러 가능성은 없다”고 미국을 안심시키면서도 “미국과 한국은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88올림픽에서 북한이 테러를 감행할 경우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것을 걱정했다.

88올림픽 안전 문제는 한국 정부에 말 못할 고민을 안기기도 했다. 국민일보는 88올림픽을 둘러싼 비화들을 기록한 미국 정부 기밀해제 문서들을 입수했다.



‘재주는 한국이 부리고 돈은 일본이 벌고’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은 올림픽을 두 달 앞둔 1988년 7월 16일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을 떠나는 7월 18일 청와대를 방문해 노태우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했다. 슐츠 본인이 대화 내용을 문서로 남겼다.

88올림픽이 코앞인 시점에 이뤄진 오찬 회동이라 올림픽 얘기가 빠질 수 없었다.

노 대통령은 “한국의 국내 안전은 심각한 문제가 아닌데 외국 언론들이 잘못된 이미지를 제공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또 “외국 선수들이 올림픽을 위해 일본에서 훈련 중”이라며 “한국이 모든 일을 다 하고 일본이 이익을 챙긴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슐츠 장관에게 “한국 내 안전 상황에 대해 미국에 올바른 견해를 제공해줄 것”을 부탁했다.

슐츠 장관은 “올림픽 안전 문제에 대한 질문을 공개적으로 여러 번 받았다”고 서두를 꺼냈다. 이어 “항상 같은 대답을 한다”면서 “‘아니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답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88올림픽 참가 독려와 안전 문제 지원

개스턴 시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87년 3월 19일 슐츠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문서에는 미국이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잘 드러나 있다.

우연찮게도 88올림픽 직전에 열렸던 두 대회는 모두 ‘반쪽’으로 열렸다. 소련이 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데 대한 항의 표시로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미국, 한국 등 자유진영 국가들이 불참했다. 이어 열린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는 모스크바 올림픽 불참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 등 동구권 국가들이 참가하지 않았다.

이런 반성에서 미국은 북한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 88올림픽 참가를 독려했다. 한국의 북방외교와 미국의 협력으로 북한과 쿠바 등을 제외한 159개국이 88올림픽에 참가했다. 미국은 또 올림픽 안전을 위한 기술적 지원을 강화했다.



소련, “북한으로 인한 문제는 없을 것” 장담

88년 3월 23일 에드아르트 세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미국 백악관에서 레이건 대통령, 조지 H 부시(아버지 부시) 부통령, 슐츠 국무장관, 프랭크 칼루치 국방장관 등과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의 주요 의제는 냉전 당시 미·소 간 중거리 핵무기 폐기와 감축이었다.

하지만 개최를 6개월 앞둔 88올림픽도 회의 테이블에 올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88년 2월 25일 권좌에서 내려온 직후인 3월 22일 미국을 찾았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을 최근 방문한 전 전 대통령이 88올림픽 안전 문제에 대해 걱정을 표시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소련은 올림픽 참가를 결정했고, 적어도 북한으로 인한 안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부시 부통령은 “우리(미국)는 북한에 대해 어떠한 영향력도 없고 걱정만 많기 때문에 그런 대답을 들어서 다행”이라고 반겼다.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이런 걱정들을 이해한다”면서 “테러는 김일성과 북한의 위상을 손상시킬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그런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미·소 간 설전 오간 KAL기 폭파사건

화제는 87년 11월 29일 발생했던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으로 옮겨져 설전이 계속됐다. 부시 부통령은 “이런 걱정은 최근 남한(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으로 증폭된다”고 대화를 이어갔다.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이 사건에 대해 특별한 지식은 없지만 북한이 연루됐다는 것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부시 부통령은 사건의 전모를 자백한 북한 여성(김현희)이 이중간첩인지 여부에 대해 질문했다. 세바르드나제 외교장관은 “그럴 수도 있지만, 나는 정보 전문가가 아니며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답했다. 슐츠 국무장관은 “여성의 자백뿐 아니라 동선의 패턴, 북한과 연루된 전화통화 등 확증적인 증거들이 있다”며 북한 소행이라고 장담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사람들이 한국으로 비행기 타고 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함으로써 북한이 올림픽과 남한에 타격을 입히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주장이 있다”고 지적하며 소련 측에 협조를 당부했다. 세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88올림픽은 열릴 것이며 많은 세계신기록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 소련 외무장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김현희에 대한 이중간첩설이 제기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에 대해 의혹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蘇, “테러 발생하면 北 자동 비난받는 분위기”

냉전이 막바지에 치닫던 80년대 후반 미국과 소련의 외교담당 고위 실무자들이 대화 채널을 가동했다. 고위 실무자 회담은 미·소 정상회담, 미·소 외무장관 회담의 기본 틀을 제공했다.

88년 5월 30일 소련 외무부 게스트 하우스에서 미·소 고위 실무자 회담이 열렸다. 미국 측 대표는 리처드 솔로몬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이었고, 소련 측에선 키리예프 아시아·사회주의국가 담당 국장이 대표로 나섰다.

키리예프 국장은 “소련도 미국 못지않게 88올림픽 안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소련은 북한을 향한 미국과 남한, 다른 지역 국가들의 ‘시끄러운 캠페인’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다”면서 “북한은 올림픽을 거부하고 테러를 감행하려고 한다고 이미 비난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키리예프 국장은 “올림픽 기간 중에 테러가 발생한다면 자동적으로 북한이 비판받아야 할 심리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아닌) 다른 테러 그룹은 한반도에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하려는 유혹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美, “北 올림픽 방해 목적 장거리 미사일 배치”

솔로몬 실장은 아웅산 테러 사건,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사건 등 북한이 저지른 테러 사건을 거론했다. 이어 “최근에는 올림픽이 다가오자 테러행위를 준비한 것으로 보이는 북한 공작원들이 일본에서 체포됐다”면서 “북한의 평화 제안은 신뢰성을 낳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솔로몬 실장은 또 “남한 영공을 위협하는 소련제 최신예 장거리 미사일 SA-5가 휴전선 부근에 배치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조치는 명백한 도발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만약 북한이 주장하듯 방어 목적의 미사일이라면 목적에 맞는 지역에 재배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북한이 올림픽 기간 중 미군 정찰기가 영공을 침범했다며 SA-5를 발사해 예기치 않은 위기 상황을 몰고 올 수 있다고 우려해 올림픽 기간 정찰비행을 억제할 정도로 SA-5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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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밍턴(미국 인디애나주)=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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