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나미] 춘자의 추억 기사의 사진
내가 춘자를 처음 만난 것은 막 레지던트가 되어 대형 정신병원에 파견 나갔을 때였다. 기초수급자인 만성 정신질환자들은 당시 치료라기보다는 수용되어 있었지만, 좋아져도 데려갈 보호자가 없어 장기 입원하는 경우가 많았다(지금도 이런 상황은 그리 달라지지 않아서 경제 형편이 어려운 환자들은 완치가 되어도 갈 데가 없다). 춘자는 그나마 나은 편이어서 의사들의 사무실과 당직실을 청소하면서 얼마간의 월급을 받고 있었다. 나이는 서른이 넘었지만 마음씨는 10대 소녀처럼 순수하고 착했으며 주어진 일도 비교적 깔끔하게 잘 해냈다.

당시 물건을 가져간다, 고기 반찬을 먹는다며 파출부조차 두지 못하게 하는 시어머니 때문에 바깥일과 집안일에 지쳐 있는 상황이라 혹시 춘자라면 잘 견디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한편으로는 만성 정신분열증이라도 주변에서 잘 돌보기만 하면 복귀가 가능하다는 내 믿음을 증명해 보고 싶었을 수도 있었다. 물론 걱정스러운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갑자기 8차선 대로변으로 뛰어 나가기도 했고, 남들과는 말도 잘 섞지 못했다. 그럼에도 춘자는 짧은 기간이지만 우리 집에서 어린아이들도 따뜻하게 돌보았고, 중풍 걸린 시아버지와도 잘 지내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여자 중 하나인 춘자를 그리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시어머니 덕에 시누이가 춘자를 데려가는 걸로 우리 인연은 마무리되었다. 당시 시어머니의 말씀이 상처가 되었는지 춘자는 가기 전 눈물 젖은 편지를 남기기도 했었다. 그나마 시누이와 시누이의 가족들은 춘자를 비교적 잘 대해주었고, 15년 가까이 그 집안을 돕다가 유방암에 걸려 다시 10여년의 투병생활 끝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병들었을 때나, 죽어갈 때나 그녀의 피붙이들은 아무도 그녀를 찾지 않았고, 곁을 지키다 장례를 치른 사람은 내 시누이였다.

가슴 짠한 삶을 살았던 춘자지만 다른 기초수급자에 비하면 매우 운이 좋은 편이다. 만성정신질환자들 대부분은 병이 나아 정신과 의사들이 백방으로 알아봐도 받아줄 가족이 없다. 병든 환자들과 얽힌 이런저런 우여곡절들 때문에 이미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피폐해진 가족들 역시 환자를 받아줄 여력이 없는 것이다. 병에 지친 환자들은 현실적인 기능이 미숙해서 사실 주변을 곤란하게 하거나 위기에 처하게 할 때도 적지 않다.

일단 정신질환자라는 딱지가 붙으면 ‘환자니까’ 하고 주변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역시’ 하는 식으로 오히려 협박을 받거나 불이익을 당할 때도 많다. 환자와 보호자들 모두 서로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깊어져 때론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많이 아픈 한국 사회라 상담사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수준 떨어지는 엉뚱한 훈련을 받고 오히려 치료를 망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장삿속으로 엉터리 심리상담가를 양산하는 사이비 학회도 적지 않다. 그나마 관리가 잘되는 병원 역시 말도 안 되는 수가 탓에 환자를 볼수록 손해만 나게 되니 적극적으로 정신질환자들을 받지 않는 추세다.

이런 현실을 알지 못하는 교수들과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으로 무조건 탈원화시킨다면 그 후유증을 누가 책임지겠는가.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도 위험하고 그들의 인권도 챙겨야 하지만, 그들을 받아주지 못하는 보호자들의 황폐한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 그동안 4대강 개발이니 자원외교니 하면서 엄청난 예산을 낭비한 것과 보험공단의 방만한 경영만 제대로 손을 봤어도 정신질환자 사회 복귀 시설을 수백 개는 만들었을 것이다. 탈원화 방향으로 보호시설이나 인력 없이 길거리를 떠돌게 될 정신질환자들의 처지와 그에 대해 무방비한 사회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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