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중의약, 황새 되고… 한의약, 뱁새 신세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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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소의 발견은 전통 중의약(中醫藥)이 세계에 주는 선물이다."

지난해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는 최초로 노벨 과학상(생리의학상)을 받은 투유유(86) 국가중의과학원 종신연구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청호소는 국화과 식물 '청호(개똥쑥)'에서 추출한 말라리아 치료물질 '아르테미시닌'을 말합니다. 투 연구원은 수천 권의 중의고서(中醫古書)를 탐독해 말라리아 치료에 특효를 보인 청호를 찾아냈고, 1971년 '에테르 저온추출법'으로 아르테미시닌 성분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0억개의 청호소 기반 치료제가 말라리아 퇴치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수백만명의 생명을 구한 말라리아 치료제는 이처럼 중국 전통의약에서 얻은 아이디어에 현대 과학기술이 더해져 탄생했습니다. 1950년대부터 서양의약과 벽을 허물고 중의약의 과학·현대·산업화를 추진해 온 중국 정부의 ‘중·서의(中·西醫) 결합 혹은 병중(竝重)’ 정책의 대표적 산물인 셈입니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중국 대륙이 ‘중의 굴기(中醫 ?起)’를 외치고 있습니다. 지난달 12∼15일 중국 중의병원과 중성약(中成藥·양약처럼 다양한 제형의 중의약 제제) 제조 기업을 둘러봤습니다. 중의약이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육성 의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양·한방 갈등과 정부의 관심·지원 부족으로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우리 한의약과는 비교될 수밖에 없겠죠?



‘중·서의 협진’…중의사도 엑스선·초음파 사용

중국 베이징에 있는 ‘시웬병원’은 국가중의과학원 산하 감염병 전문 중의병원입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이 창궐했을 때 서양의약과 함께 중의약으로 사스를 퇴치해 국제적 주목을 받은 곳입니다. 300여명의 이곳 중의사들은 질병 진단과 치료에 12경락측정기나 설진·맥진기 같은 중의약 기반 진단장비는 물론 엑스선·초음파·CT·MRI 등 현대 의료기기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쑨치웨이 교수는 “중의약 대학에서 ‘서의 학습 중의반 프로젝트’ 등을 통해 서양의학 과목을 배우기 때문에 중의사들이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제약도 없고 수술도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중·서의 협진’은 좋은 치료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2014년 10월 발표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신종플루 환자 15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중·서의 결합 치료(항바이러스제와 함께 청열해독 중성약 처방)는 86.7%의 완치율을 보였습니다. 서의 단독 치료율(53.3%)보다 훨씬 높은 수치입니다.

중의과학원 산하 또 다른 중의병원인 ‘광안먼병원’은 매년 25만명의 암 환자(입원치료 연간 3000여명)들이 찾는 병원입니다. 이곳에선 항암·방사선요법과 함께 20여종의 중성약(고약·환약·가루약·캡슐·시럽·주사제 등)으로 암 치료를 합니다. 병원 안에는 중약방과 서의 약방이 함께 갖춰져 있습니다. 침구 등 대부분의 중의약 치료와 중성약(203종)은 의료보험 지원도 받습니다.

중국 정부는 1976년 ‘중·서의 결합 10년 발전계획’을 세우고 교육과정 정비를 통해 중·서의 협진을 지속 추진해 왔습니다. 모든 의과대학은 중의학을 배우고, 중의학 실습도 합니다. 중의약 대학에는 서의 교육과정(진단·생리·해부·병리·약리학 등)이 개설돼 있습니다. 두 분야를 두루 섭렵한 의료인 양성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또 2003년 시행된 ‘중의약 조례’(국무원의 행정법규)에선 중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과 양약 처방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베이징전통의학연구소 박익희 선임연구원은 “중국에도 몇 차례 ‘중의약 폐지 논쟁’이 있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중의약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은 중의약을 국제적 브랜드로 구축해 세계 전통의약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야심도 갖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 전통의약시장은 2008년 2000억 달러(250조원)에서 2050년 5조 달러(6000조원) 규모로 급성장할 전망입니다. 2011년 기준 세계 전통의약시장에서 중의약은 72조원 규모(4233억 위안)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7조4000억원 규모(2009년 기준)에 불과한 한의약보다 9.7배 많습니다. 중국이 해외로 수출하는 중성약은 연간 4조원에 달합니다.

중국 정부는 전통 중의약 형태인 ‘탕약’의 현대화를 위해 첨단 바이오 기술을 접목해 제형을 다양화하는 작업을 벌여왔고 이것이 세계 시장 진출의 발판이 됐습니다. 베이징에 있는 캉런탕약업회사는 탕약을 커피믹스처럼 가루약으로 만들어 포장한 ‘배방 과립제’를 생산해 미국 영국 등 10여국에 연간 2000만∼3000만 위안(35억∼52억원)어치를 수출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캉런탕약업회사를 포함해 전국의 6개 중성약 제조 기업에 배방 과립제 생산 독점권을 주고 수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중성약 생산 과정과 안전성 검증 절차가 모두 과학화돼 있어 웬만한 ‘바이오 기업’ 수준입니다. 여기에다 중국 정부는 올해 초 ‘중의약 발전규획 2016∼2030’을 발표하고 세계 전통의약시장에서 종주국 입지를 다지려 하고 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신세 한의약

우리 국민 4명 중 1명이 이용하는 한의약의 현실은 초라합니다. 의사들의 견제, 정부의 방관 속에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 문제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의사들은 2013년 헌법재판소의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합헌’ 결정 이후 한의약 표준·과학화를 위해 엑스선·초음파 등 현대 의료기기 활용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정부도 2014년 말 국무회의에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규제 완화’를 발표하고 명확한 기준을 마련키로 했습니다.

그러나 의사협회의 반발로 아직까지 기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가 지나치다는 비판마저 나옵니다. 환자단체들은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한의사에게도 최소한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10년 의료법 개정으로 116개(2010년 기준) 의료기관이 양·한방 협진을 표방했지만 의사들이 적극 참여하지 않으면서 실제 진료 현장에서 협진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의과가 설치된 국공립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과 부산대병원 2곳뿐입니다. 서울대병원, 국립암센터 등에서 몇 차례 한의과 개설을 추진했지만 의사들의 반대로 무산됐습니다.

약침이나 추나요법, 첩약(탕약) 등 건강보험이 되지 않는 항목들도 여전히 많습니다. 한약제제 제약 기업은 대부분 영세하고 수출을 하는 곳은 전무합니다. 한의약 관련 정부 예산은 220억원(2014년 기준)에 불과합니다. 중국의 중의약 지원 예산 1조3600억원(2013년 기준)과 비교해 62배나 차이가 납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 제3차 한의약육성발전계획(2016∼2020)을 수립하고 한의약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보급, 한의약 연구·개발(R&D) 지원, 한의약산업 글로벌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속도가 더딥니다. 세계 시장에서 중의약과 경쟁하려면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한의약 발전을 가로막는 현실적 문제 해결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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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글·사진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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