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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토크] 위장과 속임수

[사이언스 토크] 위장과 속임수 기사의 사진
벌난초. 위키미디어커먼스
사군자 중 여름을 상징하는 난초. 산중에서 은은한 향기를 발산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난초는 고결함의 상징으로 군자 덕목 중 하나로 비유된다.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 가운데 가장 다양한 종을 지닌 식물의 하나로 진화한 난초는 극지방을 제외한 지구의 모든 땅을 점령한 정복자이기도 하다. 이렇듯 광범위한 점령지를 확보하는 진화적 과정에서 수반되는 치열한 경쟁을 이들은 은은한 향기와 아름다운 자태로 극복했을까.

이들의 진화적 성공 비결은 향기와 자태가 아니라 속임수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번식과 생존에 필수적인 꽃가루 매개체(새와 곤충) 유인 전략으로 대부분의 난초들 역시 꿀과 같은 보상 물질을 제공하는 상생의 원리를 채택하지만, 이들 중 3분의 1은 꿀을 만드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번식률을 높이는 속임수를 활용한다. 시각, 후각, 촉각 등 감각적 수단의 속임수는 물론 행동적 습성을 유발하기 위한 거짓된 위장을 번식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꿀을 제공하는 다른 꽃의 모양으로 유인을 하는 종, 비행 중인 수벌을 흉내내 영역싸움을 유발케 하여 화분을 묻히는 종, 그리고 짝짓기 대상처럼 꽃의 형태를 변형시켜 유혹의 속임수를 부리는 종 등 지난 8000만년 동안 이들은 야생에서 번식을 위해 다양한 속임수를 구사해 왔다. 이 가운데 이탈리아 서부 해안역에 자생하는 오프리스속의 벌난초는 가장 영악한 속임수를 쓰는 종으로 유명하다. 벌난초 꽃은 암벌의 겉모습, 냄새와 감촉까지 모사하여 수벌을 유인한다. 짝짓기에 실패해 실망한 수벌은 다른 벌난초를 향해 돌진하고 이들의 수정은 쉽게 이뤄진다.

기만전술이 기본이고 위장과 거짓 정보를 흘리며 상대를 흔드는 속임수가 난무하는 곳이 바로 전쟁터이다. 고로 야생 난초의 삶의 터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몸부림의 전쟁터이고 이들은 그 속에서 고도의 속임수를 내재화해 왔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천민자본주의로 경도된 기업이 소비자를 속이고 거짓 정보로 목숨을 앗아가며 환경을 오염시키는 일이 다반사이지 않은가. 평화로운 일상이 아득하고 전쟁터 같은 비정상적인 행태에 익숙해져서인가, 생존을 위한 난초의 속임수는 차라리 고결해 보인다.

노태호(KEI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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