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경원] 밥값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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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 못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야 내 밥값을 하는구나, 기자생활 초반에 진작 깨달았다. 사회부가 수습기자에게 쓰도록 허락해준 사건기사는 사실 세상에 널린 보잘것없는 범죄였다. 40대 무직자가 서울 종로구의 한 횟집에 들어가 고급 참치회 한 접시를 주문했다. 소주 한 병까지 곁들여 깨끗하게 접시를 비우고는 태연하게 카운터로 걸어가 말했다. “사실 돈이 없어요.” 아껴둔 ‘오도로’를 정성스레 썰어 내었던 횟집 주인은 화를 억누르고 경찰을 불렀다.

페이지마다 손도장이 아무렇게나 찍힌 피의자 신문조서를 곁눈으로 흘끔흘끔 훔쳐봤다. “며칠째 밥을 못 먹었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 그냥 먹었습니다” 따위의 말이 가득했다. “형님, 이거 참… 나쁜 짓은 나쁜 짓인데, 영 불쌍한 사람 아닙니까?” 조사를 마친 형사가 의자에 몸을 깊이 묻다 말고 빙글빙글 웃었다. “아니 누가 누굴 걱정해. 거기야말로 밥 굶고 다니는 사람 같아 보이는데!” 하긴, 씻지 못해 악취 풍기기는 수습기자가 웬만한 무전취식자 저리가라였다.

책상에 펼쳐진 조서를 거둬가지 않고 짐짓 모른 체해주는 것도 좋았지만, ‘밥은 먹고 다니느냐’는 형사들 인사가 무엇보다 고맙던 시절이었다. 쉼 없이 지시와 질타를 반복하던 신문사 선배들도 수습기자에게 밥 먹을 시간은 줬다. ‘컷’ 소리가 난 뒤의 공포영화 촬영장처럼 문득 잠깐의 평화가 찾아들면, 경찰서 주변에서 이 식당 저 식당 물색하는 호사를 찾기도 했다. 물론 가끔은 밥숟갈 내던지고 뛰어나갈 일이 없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 밥때를 방해받은 이야기를 하면 선배들이 민망해했다. 동학 교주 최시형이 “밥 한 그릇에 만고진리가 들었다”고 했다더니, 한국인 정서를 관통하는 건 아무래도 밥인 모양이었다. 낙원구 행복동을 철거하러 온 사나운 인부들도 난쟁이 가족의 식사를 보고는 해머 휘두르길 잠시 멈췄다.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박목월의 시어가 시대의 비참함을 숨겼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결국은 밥의 신성(神性) 때문이었다. 밥을 모조리 수탈당한 농촌에서 술이 익다니, 과연 허용된 서정이냐는 혹평이 있었다.

법조계를 출입하며 들어보니 노련한 검사들은 피의자를 호되게 추궁하다가도 밥은 마주앉아 정답게 먹는다고 했다. 식사를 같이 하고 밤이 지나 칫솔이며 수건을 건네면, 갑자기 진술이 풀리기도 하더라는 경험담이었다. 이름난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검찰청에 와 오래도록 조사받을 때, 기자들은 기사에 쓰지 않으면서도 한 가지를 꼭 묻는다. “점심은 뭘 드시던가, 다 비우시던가?” 검찰 간부들은 “무슨 쌍팔년도 질문이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대개는 메뉴를 알고 있다. 모두가 사람이라면 밥 앞에서 안도하고 정중해지기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밥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매양 따뜻하다고 해서 모든 밥이 나란히 따뜻한 건 아니다. 천차만별의 밥값이 밥의 불평등을 간단히 증명한다. 매일 이 불평등의 틈바구니에 뛰어드는 생활인들의 각오는 엄청나다. 정호승 시인은 ‘밥값’에서 “어머니/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노래했다. 프로야구 김성근 감독을 야신으로 우뚝 세운 것도 어쩌면 밥의 불평등이다. 선수들 몸값 올려주는 걸 자신의 밥값으로 여기는 그는 “몸쪽 승부 못하는 투수 집에 가면 냉장고에 김치뿐”이라는 기막힌 비유를 했다.

밥값의 가혹한 생리를 받아들여 절박하게 노력하는 태도는 숭고하다. 하지만 그 밥값의 현실이 정당한지는 모두가 분명히 따져봐야 한다. 서울남부지검 김홍영 검사가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택한 식사는 컵라면이었다. 이문재 시인이 “거기엔 개인의 취향이 들어갈 틈이 없다”고 썼던, 가능한 가장 간편하고 정형화된 밥이었다. 그는 부장검사로부터 업무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았고, 시간을 아끼려 컵라면을 먹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심정으로 끓는 물을 부었을 그를 많은 이들이 애통해한다.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은성PSD 직원 김모씨가 생일 전날 세상에 남긴 것도 컵라면이었다. 그가 결국 열지 못한 그 컵라면은 동네 편의점에서 800원에 파는 것이다. 86g, 375㎉, 뚜껑에 ‘한국인의 맛’이라고 적혀 있다. 후배가 써낸 기사에서 김씨의 급여명세서를 보니 그의 식대는 한 달 9만원이다. 작업가방 속에 숟가락을 넣어 다니던 그에게, 많은 이들이 “3만원짜리 밥을 대접받지 못하게 됐다”고 볼멘소리하는 꼴이란 우습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회부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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