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지식 없는 지옥 기사의 사진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이 지옥에 살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한 장년 미국 동포가 일시 귀국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글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퍼가기’를 통해 돌려보는 글이다. 이분은 ‘헬조선’을 탓하는 우리의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어한다.

“한국에 와보니 웬만한 동네는 모두 고층 아파트화가 되었다. 가정집뿐만 아니라 공중화장실에도 미국에서는 부자들만 쓰는 비데가 설치되어 있다. 주차 티켓 뽑는 일 없이 자동인식으로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간다…대중교통은 카드 하나로 해결되고 전등은 LED이며 전등, 가스도 리모컨으로 작동된다. 방문하는 집마다 리클라이너(뒤로 눕는 의자나 소파)가 있고 거실엔 수백개의 채널이 돌아간다. 럭셔리함과 고급 제품에 놀랍고 부럽다. 예전 일제 제품을 보는 듯 신기하다. 또 편리한 지하철과 고속열차, 값싼 택시비, 몇 걸음만 옮기면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음식…내 삶은 마치 20∼30년 과거에 살다온 느낌이다. 미국에서 나름 부자 동네에 살다온 나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은 자신들이 지옥에 산다고 푸념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싼 전세비와 교육비, 조기퇴직에 따른 불안한 미래, 정치의 헛짓 등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들 대개는 땅이나 주식 투자를 했고, 고급차를 가졌으며, 자녀에게 고액 과외를 시켰다.

그는 연 2%대의 모기지론, 전세라는 훌륭한 시스템, 10배 싸게 느껴지는 건강보험료, 10달러짜리 밥을 먹어도 세금과 팁이 없어 25% 정도 싼 느낌의 물가 등을 부러워했다. 50대가 되면 회사에서 쫓겨나야 된다는 푸념에 일시해고(layoff)를 당하는 비율은 미국이 훨씬 높다고 지적했다.

“냉장고 2∼3개를 가지고, 고기를 종종 뜯고 사시미를 먹고 좋은 차를 몰고 고급스러운 집에 살면서도 가난과 위기를 노래하게 된 내 조국…오늘도 수많은 이들의 불평을 듣고 있다. 살아보지 않은 외국인으로서의 오해인가. 나도 살아보면 이들처럼 느끼게 될지…이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안식과 평안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는 잠언 23장 4절로 이 글을 마무리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오늘 우리는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두고 잔다. 그리고 잠을 깬 후에는 스마트폰을 먼저 집어 하루를 연다. 살인과 성폭행, 걸그룹 사진과 연예인 스캔들, 타협 없는 정치 뉴스 등으로 채운 극단의 정보가 헬조선을 만든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크리스천이라고 행태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손에 많은 것을 쥐고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사사로운 지혜’ 때문이다. 머리맡에 성경 등 고전이 있어도 스마트폰을 먼저 집어 드는 세상.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중심에 두지 않고 자기중심의 지혜로 서바이벌하려 든다.

우리의 믿음도 사사로운 지혜로 세상적인 칭송을 받고자 한다. 그 믿음이 대체 뭘까. 히브리서 11장의 첫 구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 아니면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는 구절? 짧은 머리로 믿음의 본질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최근 묵상 가운데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사사로움을 떨칠 수 있는 대목을 읽었다. “신앙(믿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확실하고 확고한 지식이다.”

믿음은 지식이다. 사사로운 맹목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것에 감사하는 것.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기에 우리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 사랑의 대상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곧 지식이며 지혜다. 반면 하나님을 멀리 두고 사사로운 지혜로 살아가는 맹목적인 믿음은 지옥이다. 그러니 아무리 믿고 부자가 되어도 안식과 평안이 있을 수 없다. 전정희 종교국 부국장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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