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기호] 사는 건 이토록 무서운 거지만 기사의 사진
소설가 조해진의 단편 ‘산책자의 행복’에는 서른 살 때부터 이십 년 넘게 대학교 철학과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친 한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이제 오십 대에 접어든 그녀는 철학과가 통폐합되면서 대학이라는 울타리에서 반강제적으로 밀려나게 되었으며, 어머니의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해 지금은 소도시 한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소설은 한숨을 내쉬며 중간중간 오랫동안 머무르게 만드는 장면과 문장들이 많았는데, 그중 편의점에 들어온 한 젊은 손님이 카운터에서 바코드를 찍고 있는 그녀를 향해 ‘혹시 홍 교수님 아니세요?’라고 묻는 대목에선 그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아, 아닙니다, 겨우 대답하는, 누군가의 선생이었으나 이제는 늙어버린 야간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된 그녀.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고 플롯화하는 장르인지라 우리는 조해진의 소설 속 ‘그녀’들을 실생활에서도 종종 마주칠 수 있다. 노어노문과 박사 학위를 받은 고등학교 후배는 대학교 시간강사 자리도 구하지 못해 전공과는 무관한 논술학원 강사가 되었으며,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동창생은 귀국 후 자신이 졸업한 학과가 아예 사라진 사실에 아연실색해 지금은 집에 틀어박혀 지내기만 한다. 국문과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아 얼마 전 만난 한 시간강사 후배는 어휴, 형. 요즘 누가 대학원을 가요, 거기 나와서 시간강사도 못하는데,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우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대두된 것은 한두 해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시간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하고 최소 1년 이상 계약, 4대 보험 보장을 골자로 하는 시간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지난 2013년의 일. 하지만 대학과 시간강사 양측 모두에서 반발하는 바람에 법 시행은 2018년까지 유예된 상황이다. 그리고 그 유예된 상황 속에서 시간강사들의 대량 해고가 이루어졌다(그래서 ‘시간강사법’은 속칭 ‘시간강사 해고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해고를 감행한 대학 측도 할 말은 많다. 대학 등록금은 수년간 동결되었고, 한 해 한 해 늘 마이너스인데 더는 쥐어짤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법 위반을 할 수도 없으니 방법은 없다(적립금을 수백억원씩 쌓아둔다는 대학은 수도권의 소수 사립대에 불과하다). 전임 교원들이 시간강사의 강의 시간만큼 더 맡아서 해 달라(참고로 지난 3년간 4년제 대학에서 줄어든 시간강사 수는 5536명이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조해진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실제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 선생님들이 그 자리를 두고 제자들과 경쟁하는 경우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불만은 이것이다. 사회에는 언제나 이해당사자 간의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고, 당사자마다 제각각의 사연이 있다. 그런 이유를 세심하게 살피고 조율하고 재정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 정치와 국가의 존재 이유일 텐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의 정치권과 국가는 도리어 싸움을 부추기고 갈등을 확산시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최저임금이나 시간강사법처럼 국민의 생계와 교육 문제가 직접적으로 얽혀 있는 분야에 대해선 정부가 뒷짐 지고 심판이나 보려 하면 안 된다. 야구장을 만들어주어야지 제대로 된 야구를 할 수 있을 거 아닌가.

조해진의 소설 속 주인공은 제자에게 ‘사는 게 원래 이토록 무서운 거니’라고 묻는다. 소설은 그 무서운 삶 속에서도 어떤 감각으로 간신히 그것들을 돌파하는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나는 좀 따지고 싶다. 왜 이렇게 우리 삶을 무섭게 만드는지, 왜 우리는 뜻하지 않게 서로 싸우게 되는지.

이기호 (광주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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