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뉴스] “말 못할 녀석” “그래서 소 타요”… 北에도 있다, 아재 개그 기사의 사진
북한의 대남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의 ‘유모아’ 코너. 대미 비방과 선조들의 재치 등 각종 주제의 100여 가지 ‘북한식 유머’가 게시돼 있다. 우리민족끼리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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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을 일이 참 드문 시절이죠. 팍팍한 세상살이에 헛웃음이라도 지어보려는 마음이 모여 만든 썰렁한 농담, 이른바 ‘아재 개그’의 유행이 씁쓸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우리도 그런데 북한 주민들은 오죽할까요. 지구상에서 가장 닫힌 왕국, 3대가 세습을 이어가고 있는 독재정권 아래서도 웃을 일은 생기고 또 강요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북한식 ‘유모아(유머)’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지도자 ‘아재’의 유머

지난 1월 북한의 한 대외 선전용 사이트에 ‘유모아에 비낀 위인적 풍모’라는 글이 한 편 올라왔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탁월한 영도자이면서도 유머에 능했다는 찬양글이었죠. 그런데 일련의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니 왠지 ‘아재 개그’를 구사하는 우리네 ‘부장님’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1999년 8월 장군님(김 위원장)이 산촌의 한 양어장을 찾았다. 지역 일꾼이 한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선녀봉’이라고 소개하자, 장군님이 “왜 선녀봉인가?”라고 물었다. 이 일꾼이 “선녀들이 물 맑은 이곳 샘터에서 목욕을 하기 위해 내려오던 봉우리라고 하여 선녀봉이라고 부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군님은 벌거숭이산을 가리키며 “지금은 저렇게 산에 나무 한대 없이 번번한데 선녀들이 내려오면 어디에 몸을 숨기고 옷을 벗겠는가”라고 했다.

지도자로서 조금 가벼워 보이는 ‘농’입니다만 “뜻있는 유모아로 산림 조성과 보호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신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릅니다. 하나 더 볼까요. 이번엔 남북 정상회담에 얽힌 일화입니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평양 상봉을 위해 평양을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일행과 수행기자들은 장군님의 기지 있는 유머에 자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연회장에 서로 떨어져 앉아있는 대통령 내외를 보고 장군님은 “대통령이 그래서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라고 농담을 던지며 같이 앉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대통령과 손을 맞잡아 들며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 채택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으면 하는 기자들의 부탁에 “우리 배우 노릇 다시 해보십시다. 그러나 출연료는 받아야겠다”고 받아쳐 연회장의 분위기를 더욱 유쾌하게 만들었다.


낙천적인 태도와 위트 있는 언행은 훌륭한 리더의 덕목으로 여겨집니다. 실제 김 위원장은 재치 있고 유머감각도 있는 편이었다고 하죠. 다만 젊은 세대의 눈에 조금 ‘아재’ 같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더군다나 무소불위의 막강한 독재자가 ‘웃어라!’ 하고 던지는 유머에 웃지 않을 강심장이 과연 있었을까 싶어 뒷맛이 조금 씁쓸하기도 합니다.

최근 북한은 7차 노동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연이어 개최해 ‘김정은 체제’를 확고히 정립했죠. 세습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신격화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면 조만간 아버지 김 위원장을 뛰어넘는 아들 김 위원장의 ‘유머 시리즈’가 소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미 적개심 선동, 언어유희 많다

또 다른 대남 선전 사이트인 ‘우리민족끼리’에는 아예 ‘유모아’ 코너가 따로 있습니다. 다양한 북한식 유머가 가득한데요, 지난 4일 업데이트된 최신 유머는 다음과 같습니다.

6·25전쟁 당시 북한 병사가 미군 포로를 잡아 소지품을 검열했다. 계집을 그린 그림, 달러, 어디서 훔쳤는지 여인들의 속옷까지 나타났다. 맨 나중에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 성조기가 나왔다.

병사는 성조기를 ‘말린 낙지를 찢듯이’ 찢더니 발에 대봤다. 미군 포로가 비굴한 모습으로 애원하듯 “그건 우리 국가의 국기요!”라고 항의하자 이 병사는 “이놈아, 알고 있다. 내 그래서 지금 너희네 성조기를 어디 쓸까 하고 궁리하는 중이야. 이크, 이거 발싸개로도 안 되겠군!”이라고 말했다.


웃음 포인트를 찾기가 참 애매합니다만 최근 대북 제재 등으로 북한이 미국에 대한 비난 공세를 이어가고 있음을 생각하면 ‘만들어진 웃음’ 같기는 합니다. 대미 적개심을 선동하는 일련의 유머들은 ‘유모아’ 코너뿐 아니라 다른 유머집에도 다수 등장하는 단골 소재입니다.

북한의 과학백과사전출판사가 2013년 평양에서 출간한 ‘조선유모아’는 북한식 유머의 총집합이라 할 만합니다. ‘지혜와 기지’ ‘도덕과 성품’ ‘군사와 군인생활’ ‘남자와 여자’ ‘가정생활’ 등 12가지 항목으로 세분해 1000여개에 달하는 유머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한 양반이 시골에서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 소에게 풀을 먹이는 한 목동에게 물었다.

“얘야 이 길이 어디로 가는 길이냐?”

“몰라요. 난 항상 여기에 있었어요.”

“이 녀석, 도회지로 가는 길이 얼마나 먼가 말이다.”

“몰라요. 여직 재 본 적이 없어요.”

“그놈 정말 말 못할 녀석이로구나!”

“말을 못 타니까 이렇게 소를 타고 다니지요.”



한 사나이가 친구에게 물었다.

“자네는 머리는 백발인데 어떻게 수염은 그렇게 새까만가?”

“그야 수염의 나이가 머리카락보다 거의 스무 살이나 아래이니 그럴 수밖에.”


지면 관계로 다 소개해드리진 못하지만 위처럼 ‘아재’스러운 말장난도,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도 가득합니다. 더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국립중앙도서관 북한자료센터에서 열람하실 수도 있습니다.

체제 마음껏 비트는 건강한 유머가 전해지길

온갖 인터넷 게시판과 댓글로 단련된 남한 사람들의 ‘센스’에 비하면 북한의 ‘유모아’는 아재 개그 축에도 못 낄 수준일지 모릅니다. 다만 일상에서 발견한 웃음을 반드시 교훈과 연결시키려는 게 북한 유머가 가진 일종의 ‘개성’으로 보입니다.

“웃음은 가장 값싸고 효과 좋은 만병통치약”이라는 버트런드 러셀의 말처럼 어쩌면 전 세계에서 가장 웃음이 절실한 곳이 바로 북한이 아닐까요.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니 만큼 자생적인 유머나 유행은 존재하겠지만 그조차 알려지지 않고 차단돼 있죠.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건 ‘이데올로기’가 투영된 유머가 대다수라서 안타깝습니다.

“냉소는 힘없는 자의 위안”이라는 러셀의 또 다른 격언처럼 앞으로는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독재 정권을 민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것만큼이나 ‘시니컬하게’ 비꼬는 ‘북한식 유머’들이 더 많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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