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돈과 명예, 하나만 택하라 기사의 사진
1년에 100억원씩 벌었다는 홍만표 변호사 얘기가 나오자 그는 “검찰이 절대 못할 겁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전관비리를 제대로 파헤칠 수 없을 거란 뜻이었다. “그걸 하자면 검사들부터 수사해야 할 텐데….” 그는 검사였다. 퇴직 후 변호사가 아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검찰총장보다 한참 선배다.

-결국 특검을 해야겠네요.

“특검도 실제 수사는 검찰에서 파견된 검사와 수사관이 합니다. 지금까지 성공한 특검이 있었습니까?”

-그럼 뭘 해야 하나요. 전관비리 없애려면.

“제도를 바꿔야지요. 판사 검사에게 돈과 명예, 둘 중 하나만 택하라고 하면 됩니다.”

-변호사 단체에서 비슷한 입법안을 내놨더군요.

“법으로는 안 될 겁니다. 당장 헌법소원이 제기되겠지요.”

-법이 아니면….

“인사권으로 하면 됩니다.”

기업인 정운호씨,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를 통해 지난 몇 달간 법조계 전관비리의 폐해를 똑똑히 목격했다. 모든 신문이 연일 사설을 쏟아내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검찰이 내놓은 결론은 전관을 도와준 현관이 없다는 거였다. 검찰은 지금 기다리고 있다. 적당히 짖었으니 조용해질 일만 남았고 시간이 그렇게 해줄 것이다.

되풀이를 막으려면 제도를 바꿔야 한다. 서울변호사회는 평생법관·평생검사제 입법청원에 나섰다. 대한변호사협회도 판검사 선발시험과 변호사 자격시험을 이원화하는 대책을 내놨다. 전관비리는 판검사가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하는 데서 비롯되니 그러지 못하게 판검사와 변호사의 길을 분리하는 방안이다. 그런데 직업 선택의 자유라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문제에 부닥친다. 또 그렇게 법을 바꾸려면 하세월일 테다.

입법을 통한 딱딱한 제도화가 어려울 때 관행이라는 부드러운 제도화의 길이 있다. 검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고 나머지 판사는 대법원장이 인사권을 가졌다. 법원·검찰 고위직에 오르려면 인사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앞서 말한 전직 검사의 제안은 인사권자가 검사장과 고법 부장판사 이상 고위직에 앉힐 사람을 고를 때 “당신 퇴직하면 변호사 하겠느냐”고 물어보라는 것이다. 하겠다는 사람은 승진시키지 않고, 안 하겠다고 약속해야 승진할 수 있는 ‘인사 관행’을 세우면 된다고 그는 말했다.

전관 변호사의 영향력은 자신도 곧 전관이 될 고위직 판검사를 통해 주로 발휘된다. 그런 자리에 전관이 안 될 사람, 그래서 청탁을 들어줄 이유가 별로 없는 사람을 골라 앉히면 전관의 힘은 자연히 줄어들 것이다. 재판을 주도하고 수사를 지휘하는 자리이기에 아랫선에서 오가는 청탁을 감독하는 역할도 충실해질 수 있다. 그들은 퇴직 후 변호사가 되지 않을 테니 고위직 출신 전관의 공급이 차단된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처벌할 순 없지만 엄청난 사회적 지탄을 받게 할 수 있다. 우리 국민과 언론의 감시 기능은 그런 행태를 그냥 놔두지 않을 만큼 충분히 예민하다.

당장이라도 할 수 있으나 인사권자에게 의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9월이면 새 대법관이 임명된다. 대법원은 후보 34명을 공개했다. 제청권자인 대법원장과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변호사 하겠느냐”고 물어봐야 한다. 위법도 아니고 차별도 아니다. 인사권 행사에 기준을 하나 두는 것뿐이다. 전관비리는 관행에서 시작됐다. 이를 차단하는 관행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변호사로 돈을 벌겠나, 고위 판검사로 명예를 갖겠나. 돈과 명예를 다 갖게 했더니 법치국가에서 법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이제 하나만 택하라.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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