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맹경환] 발표 시점은 절묘했지만… 기사의 사진
지난 12일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가 남중국해 중국 영유권 불인정 판결을 내리자 중국은 준비했던 것을 쏟아냈다. 중국 외교부와 중국 정부의 성명이 나왔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남중국해 도서는 예로부터 중국의 영토”라고 선포했다. 리커창 총리는 수용하지 않겠다고 거들었다. 관영 CCTV 메인 뉴스는 30분 방송 중 16분을 남중국해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 날 중국의 모든 신문 1면 톱은 시진핑의 발언이었다. 13일 한국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의 배치 지역이 발표됐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기존 중국 입장만 반복하며 넘어갔다. 민족주의 성향의 환구시보 정도만 경북 성주를 제재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을 뿐이다. 다른 언론은 큰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베이징에서는 사드 발표 시점이 절묘하지 않으냐는 얘기가 오갔다. 중국이 남중국해만큼이나 사드 공격에 나섰다면…. 중국에 사드는 한국의 배신을 상징하는 말이나 다름없다. 미국에 못다 한 분풀이를 한국에 할 수도 있다. 남중국해 판결 이후 인터넷상에서는 필리핀산 망고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미국 나이키 신발을 신었다고 주먹다짐이 오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국 화장품 불매운동이, 한국 드라마를 본다고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2000년 6월 마늘 파동을 거론하며 더 큰 보복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당시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라 저가 중국산 마늘에 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자 중국은 한국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나 정부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직 사드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보복조치가 나올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중국이 하려고 해도 예전처럼 막무가내식은 되지도 않고, 돼서도 안 된다. 경제보복은 중국도 잃을 게 많겠고, 글로벌 리더로서 존경을 받아야 할 중국이 쩨쩨하게 군다면 체면이 설 수 있겠는가. 모두들 가길 꺼려하는 천안문 망루에 박근혜 대통령이 시 주석과 함께 올랐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도 해주지 않았나.

경제보복 걱정보다는 오히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카드를 너무 쉽게 써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더 크다. 무슨 이유에서 서둘렀는지 의아스럽다. 사드 배치 발표 시점 논의에서 외교라인이 배제됐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중국은 북한이 백기를 들게 만들 확실한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북한의 생명줄 원유다. 중국은 4차 북한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의 숨통을 조일 의지는 아직 없는 듯하다. 사드로 중국을 압박한다고 해서 중국이 나선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중국의 마음을 바꾸게 만들 카드로는 충분히 활용할 수는 있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에 위기감을 느꼈던 중국이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역사 역주행에 반감을 가진 한국을 미·일동맹에서 살짝 떼어 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드 배치는 결국 한국이 미·일동맹 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만큼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 핵도 싫지만 북한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싫게 만들 수 있다. 북핵문제 해결이 더 요원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사드의 실제 배치까지는 시간이 있어 카드 유효기간은 만료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있다. 문제는 한국 내 반대 여론이다. 중국 언론에서 사드와 관련된 사진은 무조건 사드 반대 시위 장면이다. ‘대통령 직무대행’ 국무총리가 성난 성주군민들에게 6시간 동안 사실상 감금당하는 사태는 사드 카드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사드 배치가 발표 시점은 절묘했지만 적절할 수 없는 이유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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