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순만 칼럼] 햄릿과 대통령 기사의 사진
연극 ‘햄릿’을 보다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생각한다. 햄릿은 이 여름 우리 문화계의 주요 코드 중 하나다. 셰익스피어 400주기와 이 작품을 처음 국내 연출한 고 이해랑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13일 국립극장에서 막이 올랐다. 출연 배우 9명이 모두 이해랑연극상 수상에 빛나는 원로급 스타 연극인들이다. 햄릿이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과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나라 핵심 권력층들이 주요 현안을 다루는 방식은 분명 비교할 만한 측면이 있다.

첫 번째 비교 포인트는 부친. 햄릿의 이야기는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 햄릿에게 부친이 살해된 내막을 알려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게 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과 유지를 이어받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다.

두 번째 포인트는 언어. 햄릿은 시종 천냥 빚이라도 갚을 만큼 절묘한 대사와 구성을 선보인다. 원작 첫 부분에서 보초교대자인 바나도는 보초를 서는 프란시스코에게 “누구요”라고 소리친다. 프란시스코는 “아니, 내가 묻는다. 서라, 신분을 밝혀라”라고 응수한다. 보초의 제1수칙은 근무자가 다가오는 사람에게 기습적으로 탐문하는 것이다. 햄릿은 시작부터 이런 틀을 가볍게 깬다. 415년 전의 작품이다. 사드 논란 정국에서 이 정부의 누구도 이렇게 국민들에게 삽상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세 번째 포인트는 현안을 다루는 방식이다. 햄릿에게는 거사를 실행할 충분한 명분과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숙고하면서 사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한다. 사색과 행동, 복수와 용서, 선과 악 등 양극단을 곱씹으면서 사태가 극적으로 나아가게 만들고 기다린다. 세대 간의 대물림, 인간 군상들의 물고 물리는 인연, 주변 국가와의 외교문제를 중층적으로 들여다본다. 세상사의 순리를 따르며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해 나간다. 그 결과 햄릿은 영국으로 추방되는 배 안에서 지인의 도움을 얻어 탈출하는 데 성공하여 악을 응징한다.

우리의 사드 정국이 결정적으로 막히는 것이 이 부분이다. 올 초만 해도 사드 배치에 긍정적인 의견은 아주 적었다. 공식적인 언급도 거의 없었다. 그러다 평소 적극적이지 않았던 국방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드 배치를 발표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과 국정 교과서 결정 과정과도 아주 흡사하다. 국정의 중대 사안이 매번 이렇게 기습적으로 다뤄진다. 통일부 장관은 설 연휴 끝 날에 입술이 부르튼 상태로 나와 회견문을 읽고, 교육부 장관은 한시적인 국정 교과서라고 해명을 하고, 외교부 장관은 사드 배치가 발표되는 시간에 백화점에 가서 양복을 사는 등 관련 부처 장관들이 기이한, 어쩌면 상징적이기까지 한 모습을 되풀이해 보여준다.

현 단계에서 북의 공격에 대비하는 데 사드 배치가 불가피한 것이라면 기습적으로 발표해 놓고 뒤늦게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방식은 정부의 민주적 역량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꼴이다. 주변국들이 우리 국정의 이런 가벼움을 지켜보고 있다.

안보 관련 사안은 정부를 믿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햄릿은 문제를 파악하기 위하여 연극을 연출해 반응을 살피고, 묘지기들의 말까지 듣는다. 조신의 눈, 군인의 칼, 학자의 혀를 모은다. 사드 배치는 군사적 효용성에 대한 논란뿐 아니라 많은 문제를 내포한 복잡한 현안이다. 사드 배치 결정으로 오히려 한반도 안보 정세가 더 긴장되고 있고, 국내 진영 간 갈등이 심화된다면 득이 실보다 훨씬 크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회를 무시하지 말고 함께 풀어가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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