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다윗의 꺼풀이 벗겨지다

사무엘하 11장 6∼13절

[오늘의 설교] 다윗의 꺼풀이 벗겨지다 기사의 사진
설교를 하고 나서 종종 “은혜 받았습니다”라는 인사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해’가 되어질 때 은혜를 받는 것 같습니다. 마침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던 것을 목사가 지지해 준다고 느낄 때 은혜를 받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감동’이 되어질 때 은혜를 받는 것 같습니다. 감정이 ‘터치’되어지고, 마음이 뜨거워지면 은혜를 받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위로’를 받을 때, 누군가는 ‘치유’를 받을 때, 누군가는 신비한 ‘체험’을 하면 은혜를 받는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은혜 중의 은혜가 있습니다. 다른 은혜는 안 받아도 이 은혜만큼은 꼭 받아야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바로 회개의 은혜입니다. 회개의 은혜는 내 죄를 깨닫고 애통해 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은혜입니다. 마음을 낮추고 주의 자비를 구하는 은혜입니다. 주님은 이런 심령들에게 가까이 하십니다. 이런 심령들에게 달려가십니다.

부흥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회개가 부흥입니다. 숫자에 속지 마십시오. 숫자는 숫자일 뿐입니다. 숫자가 부흥이 아닙니다. 서울 여의도광장에 몇 명이 모였든 그것이 부흥은 아닙니다. 부흥은 각성입니다. 부흥은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형제들아 어찌할꼬”하면서 엎드리는 것입니다(행 2:37).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자신이 부자인 줄 아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계 3:17). 자신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태도에 대해서 토해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3:16). 주님은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해 특별히 ‘CT 촬영’을 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를 말씀하셨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심각한 암덩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벌써 3기를 지나 4기로 진입하고 있었는 데도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은 꽤 괜찮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살려내고 싶었습니다. 그러자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응답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 3:19). 회개는 누가 하란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능동태가 아니라 수동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고 말씀합니다. 문을 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들어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빛이십니다. 생명의 빛이십니다(요 8:12). 주님의 빛은 해나 달을 무색케 하는 빛입니다(계 21:23). 이 빛이 들어오면 드러나지 못할 게 없습니다.

나의 곤고함, 나의 가련함, 나의 가난함, 나의 눈 멈, 나의 벌거벗음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마음이 깨집니다. 가슴을 치며 애통합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의 자비의 빛이 당신을 비춥니다. 곧바로 당신께 임합니다. 용서가 임합니다. 자유가 임합니다. 치유가 임합니다. 이것이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진실로 사모합시다.

손희선 목사 (광주 열린벧엘교회)

약력=△광주 출신 △호남신학대학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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