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수정] 지하철 무용담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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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에서 한 중년 남성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얼굴에 감정이 쉽게 드러나는 사람 같았다. 놀란 표정이 스치더니 이내 안달 난 듯한 눈빛으로 주변을 이리저리 살폈다. 다음 정거장을 안내하는 방송이 객실에 흐르자 남성은 다급해졌다. 대체 이 남성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당시 이 남성의 이상한 움직임을 알아챈 사람은 두 명이었다. 지하철 창으로 흥미롭게 아저씨를 지켜보던 나, 그리고 내게 자리를 내어준 한 사람. 나는 제법 배가 불러온 7개월 임신부였고, 퇴근길 언제나 그렇듯 서서 가고 있었다. 아저씨는 임신부에게 몹시도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어 했다. 몸을 들썩이며 무언가를 물색하던 아저씨에게서 그 이유를 찾아낸 이가 내게 자리를 내어줬다. 살며시 일어나 와서 앉으라는 눈빛을 보냈고, 나는 쑥스러운 웃음으로 두 사람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 경험은 ‘임신부 대중교통 무용담’ 가운데 특이한 사례가 아닐까 싶다.

아저씨가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된다. 그가 발견한 ‘무언가’가 옆에 서 있는 여자의 ‘불러온 배’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발견한 것은 내가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 ‘임신부 먼저’라는 동그랗고 작은 카드였다. 카드와 나를 힐끗 보더니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 채 선뜻 자리를 내어 줄 사람을 찾았던 것이다.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임신부 먼저’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게 기꺼운 일은 아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지”라는 비아냥이나 “저렇게 당당히 자리 양보를 요구하는 여자들이 ‘맘충’이 되는 거지”라는 저주에 가까운 비난도 들리는 것 같다. 실제로는 호의 받는 일이 거의 없고, ‘임신부의 미래는 맘충(mom+蟲)’이라는 예언(?)도 근거 없지만 말이다. 그래도 꿋꿋이 ‘임신부 먼저’ 카드를 달고 다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생존 때문이다. 9호선 지옥철을 타고 퇴근하던 어느 날, 밀치고 밀리는 사람들 틈에서 배를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다소 과장해서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누군가의 팔꿈치나 가방으로부터 아이와 양수가 담긴 배는 지켜냈으나 다리를 놓쳤다. 중심을 잡으려 발에 힘을 줬더니 쥐가 났다. 상체가 무거워지는 임신 중후반기에는 다리 근육에 부담이 커져 근육 경련이 자주 생긴다. 종아리가 뻣뻣해지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지만 버티고 서 있는 것 말고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이후 ‘임신부 먼저’라는 카드를 갖고 다닌다. 여기엔 ‘먼저’ 배려를 받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임신부의 그럴 ‘권리’를 알리려는 정치적인 의도도 담겨 있지 않다. 그저 “제가 임신 중이니 배를 밀치지는 말아주세요”라는 당부를 담았을 뿐이다. 지하철, 버스 안에서 이 카드는 눈길조차 받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작게나마 안심이 된다.

지하철 안 ‘임신부석’은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된다. 임신부석에 앉은 남자들을 고발하는 사이트가 생기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대체 왜 이런 이슈가 생기는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아 관련 뉴스들을 찾아봤다. 참담했다. 댓글에는 임신부에 대한 비난과 경멸로 가득했다. “그렇게 힘들면 차를 몰고 다녀라” “택시도 못 탈 정도로 돈이 없나보네” “남편이 돈을 못 버니 임신한 여자가 지하철 타고 일하러 다니지” 등등의 공격적인 악플이 줄을 이었다. ‘인간 존중’이나 ‘공동체 의식’의 부재 같은 걸 문제 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댓글 여론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인 사고(思考)는 아닐지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게 섬뜩했다. 여기엔 “힘들고 어려운 상황은 돈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 “돈이 없어서 힘든 것을 남 탓 하지 말라”는 식의 논리가 숨어 있다. 댓글의 공격성만큼이나 씁쓸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임신을 하면 급격히 불러오는 배를 지탱하느라 허리가 끊어지게 아프거나, 늘어난 골반이 바스라지게 아픈 경우가 많다. 입덧, 근육경련, 부종, 빈혈 등이 임신부를 괴롭게 하고 때론 태아를 위험하게 한다. 임신부를 위해 마련해 놓은 빈자리는 편안함이 아니라 안전 차원에서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임신부 먼저’를 달고 다녀도 10번 중 9번은 외면당한다. 하지만 좋은 사람은 언제나 있다. 적극적으로 자리를 찾아주고 싶어 했던 아저씨, 스마트폰을 보다 벌떡 일어났던 여고생, 옆 자리 어린 아들을 무릎에 앉히고 자리를 권했던 아이 엄마…. 괴로웠던 무용담 대신 유쾌한 경험을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날이 언젠가는 오길 바란다.

문수정 문화팀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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