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윤중식] 말 못하는 의자가 무슨 죄? 기사의 사진
“멀쩡한 의자는 바꾸고, 국회 본회의장 의자는 텅 비고….”

어젯밤 TV 뉴스를 시청하면서 열을 받았다는 택시기사는 22일 오전 출근길 승객의 반응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국회가 의원실의 의자 2400개를 모두 새것으로 교체하면서 정작 여야가 날을 세우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에 대한 질의가 이틀째 이어진 날 오후까지 회의장을 지킨 의원은 50여명에 불과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드웨어인 의자만 바꾼다고 바뀌나? 의원들 생각, 소프트웨어는 안 바뀌는데….

“(2014년 기준) 급여는 연봉 1억4000만원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65세부터 죽을 때까지 매달 120만원이 따박따박 나오지요.”

그는 정치에 한이라도 맺혔는지 거침없었다. “연 2회 해외시찰 등 각종 특혜를 받기도 합니다.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기타 초법률적 권리도 갖고 있지요.”

듣고만 있기가 거북해서 “혹시, 국회의원의 의무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머리를 긁적거렸다. “고위 공직자로서 청렴과 국익 우선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지위를 남용해서도 안 되고요. 겸직도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의무를 하는지 안 하는지 검토하고 확인할 수 없는 항목이 상당수라는 점이지요.”

승객의 얘기는 흥미가 없다는 듯 그 기사는 자기의 얘기를 계속했다. “일 많이 하는 스웨덴의 국회의원은 월 950만원 정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국회의원 보다 200만원 정도 덜 받는거지요. 우리는 보좌관도 여러 명 둘 수 있는데 스웨덴 의원은 보조직원도 아예 두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는 되레 자기가 택시를 전세 낸 듯이 일방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의원의 신분이 비정규직이라는 것과 병이 들어 일하지 못하면 당연히 세비는 수당에서 삭감될뿐더러 면책특권도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의자도 없이 서서 일하는 의원이 대부분이에요. 그들은 평균 100개 넘는 법안을 내는 강도 높은 일을 합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저만치 보이는 서강대교 초입에서 그 기사는 우리나라 국회 본회의장 의원 좌석 배치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스웨덴은 우리처럼 정당별로 앉는 것이 아니라 출신 지역별로 여야가 어우러져 회의한다고요. 지역이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근본원리를 실현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그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배지라고 했다. 현직 국회의원은 ‘은배지’를 달고 다닌다고 했다. 의원활동을 성실히 마치면 그제야 비로소 ‘금배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의원직을 ‘봉사의 상징물’로 여깁니다. 권력은 국민을 위해 써야 하고, 국민의 세금을 아끼는 것이 체질화됐기 때문이지요. 만일 식사 대접을 받으면 그만큼 세비를 반납합니다.”

비서도 없이 특권을 내려놓고 일에 몰두하는 의원들을 스웨덴 국민은 신뢰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덴마크 국회의사당 앞에는 국회의원들이 타고 다니는 자전거 주차장이 있다는 얘기를 끝으로 그 기사와의 만남은 마무리됐다.

택시에서 내려 사무실에 들어와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 그 택시기사가 흥분한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지난 19대 국회 개원 초기에도 사무집기 구입비로 35억원 넘는 세금이 투입됐다는 것이다. 국회 사무처는 뒤늦게 ‘혈세 낭비’라며 전면 보류를 지시했지만 지하주차장에는 이미 그 전전 국회에서 바꾸어 방치된 멀쩡한데도 주인을 잃은 의자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고 했다.

의자를 바꾼다고 의원들이 달라지나. 19대나 20대나 의원들 생각은 그대로인데, 할 일과 안 할 일 구분도 못 한단 말인가. 멀쩡한 의자 바꿀 생각 말고, 국회 본회의장 의자나 지켰으면 좋겠다. 말 없는 의자가 무슨 죄란 말인가.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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