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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공개방송’ 시큐리티 갑질에 뿔난 10대

오빠들 보러 갔는데… 끝없는 대기·폭언, 툭하면 ‘퇴장’ 엄포

‘음악 공개방송’ 시큐리티 갑질에 뿔난 10대 기사의 사진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스마트폰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게 고등학생 김모(16)양의 일과다. 아이돌 그룹이 출연하는 음악방송 프로그램의 ‘사전녹화’를 방청하려면 서너 시간 전부터 방송국 주변에서 대기해야 한다. 사전녹화를 방청하려는 팬들에게 끝없는 기다림은 익숙하다. 좋아하는 ‘오빠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땡볕 정도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도 참을 수 없는 게 있다. 방송국과 용역계약을 맺은 보안업체, 일명 ‘시큐리티’의 횡포다. 녹화장에서 팬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맡는 시큐리티는 방청 참여인원을 정할 수 있고, 녹화장에서 팬들을 퇴장시킬 권한도 가지고 있다. 시큐리티가 횡포를 저질러도 팬들은 속수무책이다.

방청을 원하는 팬들은 먼저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다. 방송 특성상 녹화 시간이 늦어지는 경우가 잦은데도 지정된 대기 장소를 이탈하면 “방청 명단에서 이름을 빼겠다”는 엄포가 날아온다. 식사를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에 잠깐 다녀올 틈도 허락되지 않는다.

기다림 끝에 녹화장에 들어가도 참을 일은 많다. 반말은 기본이고 폭언도 잦다. 시큐리티는 10대 여학생이 대다수인 팬들에게 반말을 내뱉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고 한다.

“무대 가까이 가면 가만두지 않겠다” “죽기 싫으면 뒤로 빠져” 등 현장을 통제한다는 구실로 폭언도 일삼는다. 시큐리티가 아이돌 사진을 몰래 찍었다며 카메라를 압수한 뒤 ‘셀카’를 보고 비웃었다는 팬도 있다.

시큐리티는 자주 ‘레드카드’를 꺼내든다. 방송 카메라가 얼굴을 잡았는데 손으로 가렸다며 퇴장, 다른 가수의 무대에 환호하지 않았다며 퇴장, 연대 책임을 물어서 전원 퇴장 등 구실도 다양하다. 녹화장을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대중교통이 끊길 때까지 녹화가 이어져도 시큐리티는 퇴장을 허락하지 않는다. 김양은 22일 “방청은 흔치 않은 기회라서 참을 수밖에 없다”며 “오빠들 보고 싶은 게 잘못은 아니잖아요”라고 되물었다.

녹화장에서는 ‘노동착취’도 일어난다. 방청 명단을 작성하고 팬을 관리하는 일은 팬 관리자인 ‘서포터스’의 몫이다. 서포터스는 시큐리티와 팬들 사이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수습하는 역할도 맡는다. 그런데 대다수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는 회사에서 정식 고용한 직원이 아닌 자원봉사자를 서포터스로 뽑아 쓰고 있다. 급여 없이 교통비 정도만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한 대형기획사에서 서포터스로 활동하고 있는 A씨(21·여)는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나이도 비슷한 시큐리티에게 읍소하는 것도 못하겠다”라고 말했다.

오랜 횡포에 참다못한 팬들은 트위터 사용자 히잉(@_gohomeandsleep)을 중심으로 공동행동에 나섰다. 지난 7일부터 구글 스프레드시트 문서에 ‘공개방송 참가자 부당대우 사례’를 모으고 있다. 문서에 남겨진 55건의 사례에는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쫓겨났다’ ‘시큐리티가 밀쳐 넘어질 뻔했다’ 등 뿔난 ‘팬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방송국 보안업체 관계자는 “좁은 장소에서 많은 팬을 통제하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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