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원윤희] 아이 낳을 엄두 못내는 현실 바꾸자 기사의 사진
“재산이 많은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리고 그런 남자가 이웃으로 이사 오면 그 사람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그 사람이 자기네 딸 중 하나가 차지하게 될 재산이라고, 그 마을 사람들은 믿기 마련이다.” 이 구절은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쓴 ‘오만과 편견’의 시작 부분이다. 이왕이면 자녀들이 좋은 조건을 가진 혼처를 골라 결혼하기를, 그래서 큰 탈 없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바람이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서른 살 전후의 혼기에 들어선 자녀를 두고 있다. 조금씩 조바심을 내기 시작했다. 미혼인 딸을 가진 친구들은 요즘 쓸 만한 신랑감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고 걱정하고, 용케 마음에 맞는 배필을 찾아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해도 결혼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걱정한다. 아무리 세태가 변했다 해도 아들을 가진 친구들은 살 집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에 걱정이 크다. 그 어려운 숙제를 이미 끝낸 친구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할아버지 반열에 오른 친구들도 양육문제 때문에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맞벌이하는 자녀들이 손주를 키워 달라고 부탁하면 들어줄 수도, 안 들어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나마 기댈 부모가 안 계시거나 다른 대안을 갖지 못한 젊은 부부들은 아이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이제 젊은이들이 결혼하는 것과 더불어 그 다음 세대를 낳고 키우는 일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가장 중요한 국가적 이슈가 됐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는 막대한 재정 투자와 정책적 노력에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젊은 세대가 마음으로는 아이를 많이 갖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 명의 자녀를 어른으로 키워내기 위해 투자해야 하는 심적 노고와 물질적 비용이 어마어마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안심하고 맡길 데가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양육 문제부터 시작해서 다른 집 아이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하려고 엄청난 교육비를 들이게 된다. 빈껍데기로 남는 부모의 현실이 자신의 미래 모습임을 알게 될 때 젊은 세대가 아이 갖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종족보존이라는 가장 원천적, 동물적 본능을 도태시키는 역설적인 진화과정을 겪고 있는 중이다.

이런 위험한 진화를 멈추게 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사명 중 하나라는 것을 납득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 세대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육아부담만 지우고, 나머지는 국가와 사회가 떠안아야 한다. 커다란 부담 없이 자녀를 키울 수 있도록 질 높은 육아시설, 다양한 교과 및 비교과 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절박한 마음을 모아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곳곳에서 새고 있는 혈세를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필요하다면 더 많은 투자도 해야 한다.

우리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아이들을 교육시켰고,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단시간 내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이제는 일류 대학이 아닌 직업학교를 졸업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차별받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사회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할 때다. 자녀의 결혼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망설이지 않고 손주들을 낳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모습을 확 바꾸어야 한다. 우리나라가 먼 훗날에도 지금처럼 역동적이고 발전하는 나라로 존재하기 위해서 우리 사회의 체질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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