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기사의 사진
이달 초 작지만 의미 있는 국제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서강대에서 개최된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16차 대회’가 그것이다.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는 전 세계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연대기구다. 아시아에서는 처음 열린 이 모임에 90여명의 각국 전문가, 활동가 등 350여명이 참가했다. 시민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까지 곁들여져 나름 성황을 이룬 역대 최고 대회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자리에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김종인 대표가 참석했다. 그는 인사말에서 “기본소득 제도 도입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같은 맥락의 발언을 했다.

학자들과 일부 단체에 의해 주목받던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가장 활발한 곳은 정치권이다. 기본소득은 재산의 많고 적음, 근로 여부에 상관없이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주는 소득이다. ‘보편’ ‘무상’ ‘무조건적’이라는 속성상 진보적 정책 대안으로 비치기 쉽다. 좌파적 특질을 띠고 있다는 불온함(?) 때문에 확장성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도 눈길을 떼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와 한국정치학회가 지난 5일 국회의원 21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0.7%가 ‘적극 도입’하자는 입장이었고, 더불어민주당에선 이에 찬성하는 비율이 43.5%였다. 노동당, 녹색당 등 진보 정당이 내걸었던 사안의 주도권이 보수정당으로 넘어가는 형국이다. 같은 조사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물은 결과 ‘공감한다’(47%)와 ‘공감하지 않는다’(51%)가 비슷했다. 의외라고 할 정도로 국민들의 이해와 호응이 높았다. 지난달 초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재한 한 워크숍에서는 지능정보사회 대응방안의 하나로 기본소득이 제시되는 등 정부 정책 테이블에서도 언급될 정도다.

기본소득이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진 것은 10년이 채 안 된다.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는 처음 이 개념을 접한 것이 2008년 국내에서 열린 한 학회였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에 가입한 것이 2010년이었다.

역사도 짧고 이념적 저항감이 있을 수 있는 프로그램임에도 근래 어느 정도 지지를 받는 이유는 뭘까. 일차적으로는 지난달 스위스에서 치러진 기본소득 국민투표가 크게 보도되면서 대중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보면 시대적 당위가 기본소득을 불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기존의 성장과 복지 패러다임이 한계에 달한 만큼 대안이 요구된다는 필요성에서다. 인공지능 시대에 비자발적 실업은 갈수록 늘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한 절대빈곤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가 기본소득이란 것이다. 노동의 제공과 상관없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는 ‘노동과 소득의 분리가 해법’이라는 철학이 깔려 있다.

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진보진영에서조차 회의적인 입장이 적지않다. 사회안전망 강화, 노동시장 내 불평등 완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유시민 전 의원은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동의하지만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담론 단계에 불과한 기본소득이 정책으로 구체화되기까지의 과정은 험로다. 증세라는 국민적 대합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복지와 세금의 교환은 결코 쉽지 않다.

기본소득은 여전히 낯선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새로운 것은 처음에 낯설다. 논의를 더 활성화하고 가능하면 실험을 통해 효용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정답인지 오답인지 확인하는 게 우리의 몫인 것 같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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